지난해 시내면세점 수수료로 1조원 지출 명품 브랜드는 슈퍼甲…"무리한 요구도 들어줄 수밖에 없어"시장 급성장했지만 성과는 엉뚱한 곳으로
서울 시내 한 면세점에서 고객들이 줄을 서서 화장품을 구매하고 있다.
[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국내 면세점 시장이 12조원 규모로 급성장했지만 그 결실은 엉뚱한 곳에서 거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여행사와 가이드에게 전달되는 연간 1조원 수준의 리베이트 탓에 업계는 수백억원대 적자를 피하지 못했고, 명품 모시기 경쟁으로 콧대가 높아진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들은 지나친 요구사항으로 각 업체들를 압박하는 모양새다. 수천억원의 투자로 몸집은 불렸지만 정부의 무분별한 확장 정책과 업계의 과열 경쟁이 이어지면서 '속 빈 강정' 사업으로 전락하게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2일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22개 시내면세점 사업자가 여행사 및 관광가이드에게 지불한 송객수수료는 9672억원에 달한다. 이는 전체 매출 대비 10.9%, 단체관광객 매출 대비 20.5%에 육박하는 수치다. 송객수수료는 여행사나 가이드가 모집해 온 관광객으로부터 발생한 매출액의 일정액을 면세점이 여행사 등에게 지급하는 것으로 일종의 리베이트다. 대부분의 여행사는 인바운드 전문의 중국계(중국본토, 대만 등)이며, 관광 가이드 역시 상당수가 조선족을 비롯한 중국인이다. 현재 법적으로 정해진 가이드라인이 없어 매년 관련 금액은 늘어나는 추세다. 2013년 시내면세점이 사용한 송객수수료는 2966억원(단체관광객 매출 대비 16.1%)에 불과했으나 2014년 5486억원(20.1%), 2015년 5630억원(19.4%)로 매년 증가했다. 물론 전체 시내면세점 매출이 증가한 데 따른 영향도 있다. 같은 기간 시내면세점 매출 규모 역시 2013년부터 4조765억원(단체관광객 매출 1조8427억원), 5조3893억원(2조7274억원), 6조1834억원(2조9018억원), 8조8712억원(4조7148억원)으로 뛰었다.
그러나 송객수수료 증가폭은 매출 증가 속도를 뛰어넘어 각 업계에 상당한 부담을 안기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지난해 송객수수료 증가율(71.8%)은 시내면세점 매출액과 단체관광객 매출액 증가율(2015년 대비 각각 43.5%, 62.5%)을 상회했다. 같은 기간 시내면세점과 인천·김포·김해 등 각 지역 국제공항 면세점을 포함한 전체 면세 업계 매출은 12조2757억원에 달했지만 시장 1·2위 사업자인 롯데와 신라를 제외한 대부분의 업체들이 수백억원대의 적자를 냈다. 결국 상당 수의 국내 업체들이 대규모 투자와 마케팅을 집행해 중국인관광객을 상대로 영업을 한 뒤, 다시 중국 업체와 개인사업자에게 이익을 초과한 돈을 수수료로 내어주는 꼴이다. 문제는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가 시장 확대 정책을 통해 보호하고자 했던 중소·중견 사업자의 부담만 커졌다는 점이다. 관세청 조사에 따르면 대기업 면세점의 송객수수료율이 평균 20.1%인 반면, 중소·중견 면세점은 평균 26.1%에 달했다. 실제 송객수수료 증가 흐름은 2015년부터 정부가 면세점 수를 늘리는 확장 정책을 내세운 후부터 두드러졌다. 2015년 초 6개에 불과했던 면세점 수는 올 연말이면 13개로 2배 이상 늘어난다. 이 때문에 초기 모객을 위해 업체들이 경쟁력으로 수수료를 올려 생태계가 위협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5년 7월 이후 특허를 받은 서울지역 신면세점의 평균 송객수수료율은 기존 면세점의 19.5% 보다 높은 26.6% 수준이다. 관세청 역시 신규 면세점이 해외 단체관광객 유인을 위해 기존 사업자 보다 높은 수수료율 정책을 운용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서울 시내 한 면세점에서 중국인 고객들이 줄을 서서 화장품을 구매하고 있다.
루이뷔통, 샤넬 등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를 보유한 외국계 업체들도 인바운드 여행사와 함께 국내 면세 업계의 '절대갑(甲)'으로 급부상하는 추세다. 면세점의 수준을 결정하는 '간판' 역할을 할 뿐 아니라 고가의 잡화를 취급해 매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들 업체는 최근까지도 내부 인테리어, 매장의 위치, 비용 문제 등으로 협상테이블에 앉을 때마다 그 요구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지난해에는 한 신규면세점과 유명 화장품 브랜드가 매장 위치 문제로 갈등을 겪자 브랜드 측이 면세점에서 근무하던 본사 인력을 모두 철수시키는 초유의 사태도 발생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리베이트는 어쩔 수 없는 마케팅 비용이기는 하지만, 최근에는 각 업체들이 존폐 위기를 느낄 정도로 그 규모가 불어나고 있다"면서 "업계에서도 자정 노력을 기울이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면밀한 검토와 전문가적인 식견 없이 면세점 수만 갑자기 늘려놓은 정책 탓이 크다"면서 "겉으로는 관광 산업 발전을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정부의 입김을 키우고 수수료 인상 등을 통해 비용전가를 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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