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000일]노란 리본은 멈추지 않는다 (종합)

[아시아경제 이현주 기자, 금보령 기자] 사흘 뒤면 세월호 참사 1000일이 된다. 누군가는 무뎌졌고 누군가는 지겹다고도 했다. 사망자 304명. 시신조차 찾지 못한 9명은 아직도 바다 깊숙이 어딘가에 살아 있다. 2014년 4월16일. 그 날 이후 세월호를 지켜온 사람들이 있다. 이들 유가족의 슬픔을 함께 나누면서 그 날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 나간다.

촛불집회에 등장한 세월호 고래

◆"저한테 물건은 있으니 사람만 있으면 된다"=김영만(55) 건축가는 '세월호 고래 풍선'을 만들어 촛불집회에 가져 나왔다. 풍선은 석정현 작가가 그린 세월호 고래 그림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애드벌룬의 원리를 이용해 만든 고래 풍선으로 헬륨가스를 넣어 띄우고 촛불을 형상화 한 LED 304개를 고래 등에 꽂았다. 노란 세월호도 함께 떠 있다. 김 건축가는 "몇몇 사람들이 모여서 한 번 만들어 본 건데 사람들의 반응이 처럼 좋을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변화를 바라는 마음에서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있다는 김 건축가는 "세월호 얘기를 이제 그만하라는 사람이 주변에 있는데 정말 가슴 아픈 말이지만 당신 자식이 희생됐으면 한 번 그 고통을 상상해보라고 한다"며 "이해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고래를 만들기 전 김 건축가는 진도 동거차도 섬에 돔 텐트를 짓기도 했다. 거센 바람에 인양 현장을 지켜보기 위한 텐트가 무너졌다는 얘기를 듣고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직접 동거차도까지 물건을 지고 올라가 직접 만들었다. 김 건축가는 "서로 얼굴도 모르고 일면식도 없던 사람들이 함께 텐트를 지었다"며 "그런 분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람"이라고 말했다.

세월호 영화 포스터

◆'세월호',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올해 11월 '세월호'를 주제로 한 영화도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를 제작한 오일권 감독은 "세월호의 국민적 아픔을 저버릴 수 없어서 영화로 제작하게 됐으며 국민들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동기를 밝혔다. 오 감독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사고 원인과 엉터리 수습 과정을 지켜보며 모두가 지쳐가고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채 대다수는 그만 잊자고, 잊어버리자고 말한다"며 "그러나 그것은 외면일 뿐 모두의 마음에 생긴 상처는 아물지 못하고 곪아 있어 건드릴 때마다 아픈 지점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또 다시 인재(人災)를 반복한다고 덧붙였다.오 감독은 영화를 보며 같이 분노하고 슬퍼하고 울면서 공감대를 형성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마음이 아프다는 이유로 지친다는 이유로 외면해왔던 현실을 직면할 수 있는 용기의 씨앗이 모두의 가슴 속에 뿌려지길 바란다"며 "그 씨앗이 가슴 속에 싹 트고 자라 사람이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고 말했다.정치적 분위기 탓인지 출연을 요청한 배우들 중 두려워하면서 거절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 감독은 "그 중에서도 세월호의 진실을 부각시켜야 한다"며 "(출연 배우들은)자식을 잃은 가슴 아픈 부모님들의 심정을 생각하며 두려울 게 없다며 출연 결정을 해줬다"고 말했다. 그는 덧붙여 "그늘이 되어주지 못한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고 싶었다"며 "팽목항 등 실제 현장을 들여다보니 눈물이 흘러 나왔다"고 했다. 영화 세월호는 오는 11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1000일이 와도 광화문광장엔 오늘도=광화문광장은 2014년4월16일 이후 시간이 멈춘 듯 했다. 노란리본 제작소, 분향소, 서명대가 있는 이곳은 그날 이후에도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매일 하루 2시간씩 이곳 광장에서 리본을 나눠주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80대 노인은 "1000일이 됐어도 애들이 안 나오지 않았냐"며 애들이 살아서 환생해 돌아올 때까지 리본을 나눠 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오래 서 있으면 가끔 어지럽기도 하지만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그만둘 수 없다"며 "단 한 사람에게라도 이 일을 더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진실 규명 관련해 시민 서명을 받고 있는 주부 권희정(44)씨는 "1000일이라서 특별할 거 없고 우린 매일 문제가 해결되기만을 바란다"고 말했다. 권 씨를 비롯한 3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은 이곳 광장에서 서명을 받고 있다. 그는 "일부 집회 참가자들이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에 책임이 없고 이제 이런 주제가 지겹다고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신경 쓰지 않고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평일 400~500명, 촛불집회가 있는 주말엔 1만명이 서명을 한다.

4·16 가족협의회 및 4·16연대 회원들이 지난해 6월28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세월호 특조위 강제해산에 대응하는 각계 긴급회의'에 참가하고 있다. (사진=아시아경제DB)<br />

◆"철저한 원인 규명, 참사 재발하지 않는 길"=박종운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상임위원은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제정에 앞장섰던 이들 중 한 명이다. 박 특조위원은 대한변호사협회 세월호 특별위원회에서 유가족들과 함께 세월호 특별법 입법 청원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는 지난해 9월30일 세월호 특조위를 강제 해산시켰다. 세월호 특별법상 특조위 활동 기간은 '위원회 구성을 마친 날'로부터 1년 6개월이다. 특조위는 조사관이 채용되고 예산을 배정받은 2015년 8월4일을 구성시기로 보고 오는 2월3일까지 조사활동이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는 세월호 특별법 시행일인 2015년 1월1일부터 활동 기간을 산정했다. 박 특조위원은 이에 대해 "실질적인 조사 기간이 짧았다"며 "전체로 보면 진상규명 관련해서는 30%정도 했을까 싶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이어 그는 특조위의 세월호 진상규명과 관련해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인 정부를 비판했다. 박 특조위원은 "정부 당국에서 사회적 재난이 발생했을 때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서 다시는 그런 참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며 "정부가 계속 감추고 거짓말을 하니까 사람들이 진실을 말해도 진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얘기했다. 박 특조위원은 현재 제2 특조위 설립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제3의 기구인 특조위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결론을 낼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이 되면 개인 문제와 시스템 문제를 아우르는 안전사회 종합대책 만들어야 한다"라며 "그래야 세월호 참사 같은 대형 참사가 나지 않는 상황으로 가는 거다"라고 강조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연합뉴스)

◆세월호 인양 전 제2 특조위 출범 목표=세월호 유가족을 변호하기 위해 끝까지 힘썼던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2월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제2 세월호 특조위 출범을 주된 내용으로 담고 있는 이 법안은 현재 신속처리(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돼 있다.그러나 박 의원은 패스트트랙 지정에 대해 안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세월호 인양이 3월에서 5월 사이에 이뤄질 텐데 선체를 제대로 조사하려면 인양 전에 제2 특조위가 있어야 한다"라며 "어떻게든 여당 또는 개혁보수신당(가칭)과의 협상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기간을 당길 수 있도록 노력해야 된다. 제가 해야 될 역할 중 핵심이 특조위 출범 시기를 앞당기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현 국회법상 패스트트랙 지정된 안건은 최장 330일이 지난 후 본회의에서 의결 절차를 밟을 수 있다.박 의원이 생각하는 제2 특조위는 수사권·기소권이 없던 기존 특조위의 약점을 보완하고 있다. 그는 "법안에 보면 특조위가 특검을 무제한으로 신청할 수 있고, 특검 후보를 아예 특조위가 추천하도록 돼 있다"라며 "사실상 수사권과 기소권을 갖는 셈이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박 의원은 "이렇게 하는 데 너무 오래 걸렸다"며 "'1000일이나 걸려야 했나'라는 생각도 들어 아쉬움이 남는다"고 얘기했다. 세월호 참사 1000일이 되는 날 안산으로 간다는 박 의원은 "그래도 요즘 희망이 보인다"며 "박 대통령 탄핵 사유에도 세월호 7시간이 들어가고, 많은 국민들이 예전과 달리 세월호 참사에 다시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1000일 가까이 함께한 유가족들에게는 "그동안 잘 버텨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금보령 기자 gold@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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