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워치]탈진실 시대의 대한민국

백종민 국제부장

"글로벌라이제이션 2.0은 끝났다." 세계적 권위를 가진 영국의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의 편집장을 지낸 라이오넬 바버의 2016년에 대한 진단이었다. 바버는 올해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진 여러 정치 현상들이 일시에 불거져 나온 것을 심상치 않은 시각으로 진단했다. 지난 20여년 간 세계는 공산주의의 몰락과 민주주의의 승리를 목격해 왔다. 그러나 2016년 벌어진 각종 정치 이벤트들은 민주주의의 위기를 무대 로 끌어올렸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대한 국민투표 하루 전날에도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영국 총리는 주변인들에게 아무 일 없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미국 대선 당시 TV 토론에 나선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의 얼굴에도 자신감이 충만했다. 막말과 파격 공약으로 무장한 도널드 트럼프와는 상관없이 자기만의 길을 갔다. 누가 봐도 클린턴은 유능했다. 그런데 상대방의 전략을 분석해 대응하는 데 실패했다. 더 많은 표를 얻고도 선거에서 지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그만큼 자만에 빠졌던 것 아닐까. 정치인들이 민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현실감각을 상실했으니 위기가 오는 것은 당연할 수순일 게다. 브렉시트가 본격화하고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는 내년은 어느 때보다도 불확실성이 현실에서 몸집을 키울 것이 분명하다. 정세의 불확실성은 경제의 발목도 잡을 수 있다. 자유무역 확대, 중국의 경제 개발, 유럽통합과 유로화 출범 등 지난 수십 년간 이뤄져온 세계 정치·경제 질서가 일순간 무너질 위기이다.  과거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상상한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유전자 조작이 가능해진 2016년, 오히려 민주주의와 정치 시스템은 퇴보하고 만 것이다. 꿈일 것 같은 새로운 미래가 열리고 있지만 오히려 지금 세계는 테러의 위협으로 가득하고 각국 정부는 통제력을 잃어 가고 있다.뉴욕타임스는 지난 8월 사설을 통해 포퓰리스트 운동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합쳐져 '포스트 트루스 시대(post truth·탈진실)'를 만들었다고 우려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고 트위터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트럼프는 대통령에 당선됐다. 스마트폰의 확산과 SNS의 부상이 낳은 이면이다. 옥스퍼드 사전이 선택한 올해의 단어 '탈진실'은 이제 '탈진실의 정치(post truth politics)'에 이르고 있다전 세계가 탈진실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에 비하면 차라리 지금 한국의 상황은 잘 된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지난 몇 년 사이 묻혀 있던 진실에 접근하고 있고 그 결과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됐다. 세계 각국 언론은 조롱 섞인 눈으로 한국의 상황을 보고 있지만 200만 촛불이 길을 낸 대한민국의 2017년은 오히려 '탈혼란(post chaos)의 계기가 될 것임을 믿는다. 백종민 국제부장 cinqang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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