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택배 알바생이 대포통장 명의인 된 사연

[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A씨는 생활정보지에서 단순 배송사원 구인광고를 보고 연락했다. 업체는 지하철 택배 아르바이트라며 배달 건당 1만5000원을 지급하는 조건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단순 서류를 전달하다록 시켜 일당을 지급했다. 얼마 정도 지나자 A씨에게 "일을 잘 한다"며 건당 3만5000원을 지급할테니 A씨 계좌로 현금이 입금되면 인출해 배달하라고 했다. 누가 봐도 이상한 업무였다. A씨가 "이체를 안 하고 왜 이런 식으로 현금을 배달하느냐"고 하자 업체 측은 "회사 매출액을 줄여 세금을 절감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속였다. 결국 A씨는 돈을 인출해 업체 측이 알려준 지하철역으로 가서 전달했다. 사기범들이 보이스피싱 피해금을 입금시킨 후 현금으로 찾도록 해 전달받는 수법에 걸려든 것이다. 사기범들은 잠적했고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신고로 A씨는 대포통장 명의인이 되고 말았다.
금융감독원은 당국의 근절 대책으로 대포통장 이용이 어려워지자 구직자를 속여 인출책으로 이용한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고 20일 밝혔다. 지난달 이후 금감원에 들어온 취업사기 관련 제보는 134건에 이른다. 금감원은 특히 겨울방학을 맞아 아르바이트생들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기범에게 통장이나 카드를 양도하는 경우 뿐 아니라 보이스피싱 피해금을 전달하는 경우에도 민·형사상 책임이 따를 수 있다. B씨는 구직사이트에서 온라인 쇼핑몰 자금, 재고, 게시판 관리를 하는 업무로 재택근무가 가능하다는 광고를 보고 지원했다가 피해를 입었다. 사기범은 자금을 관리할 입·출금통장과 인터넷뱅킹 가입이 필요하다고 했으며 이체한도를 수천만원 이상으로 해 둘 것을 요구한 후 B씨의 통장을 관리자 통장으로 지정한다고 속였다. 이후 관리자 등록 통장으로 자금이 입금돼 일정 금액 이상이 되면 지정계좌로 이체하라고 했다. B씨 역시 대포통장 명의인이 됐다. C씨는 경매대행 업체라며 현장조사 아르바이트를 모집한다는 문자를 받고 지원했다가 낭패를 봤다. 사기범은 "경매 의뢰인의 경매대금이 부족한 경우 그 대금을 대납해주고 낙찰 받은 후에 컨설팅 수수료와 함께 대금을 돌려받는 업무를 해야 한다. 세금 절감을 위해서 현금으로 받는 경우가 있다. 본인 계좌로 입금 받아 회사에 현금으로 전달하면 된다"고 속였다. 금감원은 인터넷 구직사이트와 생활정보지 등에서 일자리를 찾는 경우에는 정상업체가 맞는지 직접 방문 등을 통해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기범들은 현금 전달 이유에 대해 주로 "세금 절감 목적이며 통장을 양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불법이 아니다"고 하지만 본인 계좌에서 자금을 대신 인출해 준 사람도 민·형사상 책임이 따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대포통장 명의인이 된 후 '금융질서 문란 행위자'로 등록되면 계좌 개설 거절, 인터넷뱅킹 등 비대면거래 제한, 신규 대출 거절 등 각종 제한을 받는다며 각별한 유의를 당부했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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