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詩] 미모사와 창백한 죄인 / 정한아

  너무 예민한 것들 앞에서는 죄인이 된다 숨만 크게 쉬어도 잎을 죄 닫아걸고 가지를 축 늘어뜨리는 미모사 순식간에 나는 난폭한 사람이 되어 사랑해서 미안한 폭력배가 되어 젠장, 알았다고, 너 혼자 푸르르라고 공주병 걸린 년, 누가 죽이기라도 한다니? 내버려 두면 어느새 정말 죽어 있는 미모사 (중략) 십 년 전에 죽은 미모사 그 어떤 미모사와도 바꿀 수 없는 미모사 모든 미모사의 대명사가 된 미모사 이제는 이름도 떠올리기 싫은 미모사 (중략) 사랑하면 미안한 미모사 방금 내린 눈 잘못 날다가 나뭇가지에 가슴을 관통당한 울새 방금 본 그 눈 녹아 버린 것들 날아가 버린 것들 자기를 잠가 버린 것들 자기를 영원히 잠가 버린 것들 
 사랑은 어떤 면에선 폭력적이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상대방은 나와 다르기 때문이다. 전혀 다를 수도 있겠고 조금 다를 수도 있겠지만 본질적으로는 같지 않다. 그러니 나의 숨결 하나에도 상대방은 움츠러들 수 있는 것이다. 내 말 한마디, 내 행동 하나, 내 신념의 어느 한 끝자락이 상대방을 아프게 할 수도 있고 슬프게 할 수도 있다. 상대방이 "공주병"이나 '왕자병'에 걸려서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 자체가 더할 나위 없는 폭력이다. 그리고 그 폭력은 마침내 자기 자신을 향하기도 한다. 특히 이미 끝난 사랑은 돌이킬 수 없기에 그 사랑의 대상은 '그 어떤 대상과도 바꿀 수 없고' 그래서 그 사랑은 '모든 사랑의 대명사'가 되어 버리곤 한다. 그러나 그러함으로써 그 사랑은 그리고 그 사랑의 대상은 "이제는 이름도 떠올리기 싫"을 만큼 징글징글하고 불편하고 때론 가증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사랑은 용서가 가능할 때까지만 지속된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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