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재 칼럼] 박근혜 대통령을 가여워하는 마음

이명재 편집위원

지난 며칠간 짧은 여행으로 다녀온 남도의 늦가을 풍광은 황홀할 정도였다. 산과 길가의 나무들은 화려한 옷을 벗고 색이 바래가는 계절의 변화를 보여주고, 바다는 바다대로 은빛 물색을 반짝이고, 그렇게 하늘과 바다와 산들은 함께 어울려 ‘금수강산’을 펼쳐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금수강산을 ‘완성’하는 것은 사람들이었으니, 자연의 부지런함과 사람의 부지런함이 서로 도와 비단보다 더 고운 산하를 빚어내고 있었다. 더없이 평화로워 보이는 그 정경에선 지금 이 나라가 처해 있는 혼란과 위기는 멀어 보였다. 지리적으로도 그렇지만 도시 거리의 시위와 한가로운 그 풍경의 대조에서 그곳은 서울의 광화문 광장으로부터 꽤나 멀어 보였다. 그러나 식당에 들어가면 TV 뉴스를 지켜보며 쯧쯧, 하는 표정에서 분노와 실망이 여기서는 여기대로 표출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실망과 분노에는 아마도 지금의 대통령을 기어이 대통령으로 만들어주고 싶었고 그래서 대통령을 지금의 자리에 있게 한 자신들에 대한 자책이 담겨 있는 듯했다. 그런데, 남도의 정경으로 내 마음이 순해진 것인가. 가냘픈 서정에 내 거친 심사가 관대해진 것인가. 나는 그런 분노와 자책을 너무 때늦은 후회라고 원망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의 재앙을 부른 어리석음이라고 질책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이 자연을 닮은 것인가, 자연이 사람을 닮은 것인가. 품에 안아주는 듯 이 유순한 산천에서 나고 자란 이들. 억센 사투리로도 따뜻한 인심을 감추지 못하는 선한 마음이어서, 그들은 부모를 잃은 것이 불쌍하다고 가여워하는 그 마음으로 온갖 결함과 미달에도 지금의 대통령을 뽑아 주었던 것이 아닐까. 그것은 해방 직후 일본인에 대한 보복이 없었던 것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모질지 않은 우리네 어진 마음이기도 한 것이었다. 100만명의 촛불이 외쳐도 ‘나는 잘못한 게 없다’며 버티는 청와대의 최고권력자가 봐야 할 것이 바로 그 마음이다. 그 어질고 선량한 마음이다. 그것이 자신에게 베풀어 준 선량한 백성들의 선량한 마음에 대해 최소한으로 보여야 할 예의며 의무다. 대한민국을 진창으로 밀어 넣었음에도, 자신과 주변을 오물 범벅으로 만들었음에도 뉘우칠 줄 모르는 어리석은 권력자가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길의 시작은 그 어진 마음을 보는 것이다. 광화문 광장에서, 전국의 거리 곳곳에서 우리가 주말마다, 아니 거의 매일 보고 있는 모습들은 참으로 우리 자신에게 긍지를 불어 넣어주고 있다. 그것은 ‘내가 이러려고 대한민국 국민이 됐구나’라는 보람을 안겨줄 만한 것이었다. 그 장엄한 감동은 단지 100만, 200만의 숫자에서 오는 게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여린 고사리 손을 호호 불어가며 촛불을 들고 의젓하게 앉아 있는 아이들의 얼굴을 볼 때 목으로 차오르는 뭉클함에서 오는 감동이다. 그 어린이의 맑은 눈망울은 자기도 그 촛불이 뭔지를 안다고 말하는 듯하다. 아빠와 엄마와 형과 언니들이 추운 밤마다 거리로 나오는 것은 바로 아이들 자기를 위해서라는 것을 아는 듯하다. 어른들의 말 없는 가운데 바라보는 눈길, 그 따뜻함과 대견함, 그리고 안타까움과 어른의 부끄러움까지가 함께 녹아 있는 그 눈길. 그 눈길의 온기는 아이들의 몸에 피로, 장기(臟器)로 들어와 앉을 것이다. 그 아이들의 눈망울이 보내는 분노 이상의 분노, 함성 이상의 함성, 그것은 남해 금산 산장에서 만난, 배운 건 없으나 머릿속에 노래 2500곡을 갖고 있는 어느 총명한 할머니가 보여준 어진 마음이기도 하다. 착한 이 땅 백성들의 마음이며 이 금수강산 산천의 마음인 것이다. 오만한 권력자여, 부끄럽지 않은가. 아니 오히려 고맙지 않은가. pro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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