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서]기업하기 좋았던 정부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

집 거실에는 TV가 없다. 거실 소파에 드러누워 TV보는 꼴을 못 보겠다는 마누라 등쌀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장모님 방으로 쫓겨난 TV가 요즘 인기다. 한 채널의 8시 뉴스를 보겠다면서 설거지를 하는 와중에도 "TV좀 켜봐"라고 부탁(?)한다. 이게 다 최순실 때문이다. 남자들의 모든 분노에 더해서 여자들의 질투심까지 추가됐으니 필자보다 뉴스를 향한 열망과 그 열망을 뒷받침하는 분노가 더 크다. 이런 남녀들이 지난 토요일 광화문 광장에 20만명가량 모였다. 전국의 주요 도시에서도 분노가 끓어 넘치고 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거론하고 있는 각종 월권이나 국정 농단에 대해 드디어 검찰이 수사를 벌이고 있다. 국회에서도 별도 특검을 벼르고 있으니 머지않아 시시비비가 가려질 것으로 기대한다. 그 가운데서 필자가 주목하는 부분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을 통한 모금활동이다. 말이 모금활동이지 사실은 기업들 괴롭히기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우리나라 역사가, 민주주의가, 언론의 자유가 후퇴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기업들이 출연금을 내는 의사결정의 방식이 30년 전으로 후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참으로 유감이다. 전두환 정부 시절에는 음성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것만 9000억원 정도라고 한다. 노태우 정부 시절에는 규모가 조금 작아져서 5000억원 정도를 비자금으로 수금해갔는데 나중에 탈이 나자 "통치자금은 잘못된 것이지만, 우리 정치의 오랜 관행이었다"고 둘러댔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기업들이 동반성장기금에 7000억원 이상을 출연했고, 미소금융재단에는 10년간 2조원을 출연하기로 했다. 과거의 정부가 이런 식이었으니 현 정부의 높으신 분들도 별 거리낌 없이 이런저런 재단을 만들어서 기업들의 출연을 자의반 타의반 이끌어냈을 것이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스포츠산업 진흥 명목의 재단은 물론 청년창업 지원, 창조경제 혁신센터 지원 등은 기업들의 출연이 아니라 정부 예산으로 수행해야 할 사업들이다. 그렇게 위세가 당당하신 분들이라면 굳이 기업들의 재단 출연에 의존하지 않고서라도 정부 예산을 배정받아서 원하는 사업을 진행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기업들의 팔을 비틀었을까? 첫째, 정부 예산은 들여다보는 눈이 많다. 각 부처의 감사관실은 허수아비라고 하더라도 감사원 감사, 국정 감사는 그냥 건너뛰기가 어렵다. 둘째, 정부 예산은 오래 지속된다는 보장이 없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라는 옛말이 있지만, 요즘은 10년은커녕 5년도 권력을 누리기가 어렵다는 속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산보다는 재단을 선호했을 것이다. 재단은 한번 출연금을 받아 놓으면 오랫동안 지속되는 '법인'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재단의 다른 장점은 낙하산 일자리를 손쉽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 청년들이 그렇게 애타게 원하는 '일자리'를 말이다. 요즘 보도되고 있는 각종 언론의 기사에 따르면, 전경련을 동원해서 재단 출연금을 걷지 않은 정부는 참여정부가 유일하다. 공직생활을 30년가량 했고 청와대 경제수석으로도 근무한 분의 얘기를 들어봐도 그렇다. 참여정부는 참 특이한 정부다. 대기업의 출연금을 받지 않음으로써 대기업 스스로 긴장하게 만든 것이다. 과거엔 부엌에서 남몰래 괴롭히는 시어머니가 갑자기 "살림 잘하라"고 기본에 충실한 말씀을 하기 때문에 한편으론 불편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말로만 기업하기 좋은 정부라면서 남몰래 괴롭히는 정부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뒤로 요구하거나 타협하지 않는 정부야말로 어렵기는 하지만 진정으로 기업을 위하는 정부, 기업하기 좋은 정부 아닐까?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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