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직장인 보고서③]혼밥·회식거부·카톡감옥...'직장인은 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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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 김은별 기자] 칸막이 없는 책상, 직급 구분 없는 호칭, 권위 대신 평등, 넥타이 대신 반바지… 우리 기업들이 변하고 있다. 연공서열이 깨지면서 막무가내식 성실함보다는 창의성과 혁신성을 더 높이 평가받는다. 지금까지 제조와 수출로 먹고 살아왔던 기업들은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변신을 택했다. 직장인들도 자의반 타의반 변신을 실행해가고 있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벌레로 변신한다. 이유도 설명도 없다. 그저 벌레로 변신했을 뿐이다. 그는 벌레로 변신한 자신을 인지하고 가족들도 거대한 벌레를 그레고르로 인지한다. 벌레로 변신한 그를 가족들은 버린다. 벌레가 된 그레고르는 자신의 지난 삶을 생각한다. 출장 외판원이라는 고달픈 직업, 그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 이미 벌레가 된 그레고르는 벌레의 언어로 절규한다. "악마여, 제발 좀 이 모든 것들을 다 가져가다오." 그레고르가 악마에게 소원한 것은 벌레가 된 자신이 아니다. 자신의 고통어린 과거의 삶, 그리고 바로 그 자신이다. 소설 '변신'은 다양한 평론가들이 철학적, 종교적 관점에서 해석했지만 카프카가 매일 같이 변신을 강요당하는 현대인을 그레고르에 비유했다고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직장과 직장인들도 그레고르가 겪는 변신의 과정을 겪고 있다. 평등해지고 밝고 명랑해진 일터, 하지만 거기에도 비애가 있다. 윗사람 눈치를 보며 애써 싫어하는 음식을 먹었던 예전과 달리 홀로 먹고 싶은 점심을 선택하며 자유를 느낀다지만 결국 홀로 외롭게 밥을 먹는다. 만연한 성과주의로 끊임없는 자기계발을 강요받는 것도 현대인들의 비애다. 스스로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다. 부서끼리 부어라 마셔라 하는 회식 자리도 드물어간다.
 ①혼밥족= "다 먹고살기 위한 건데, 밥이라도 좀 편하게 먹읍시다." 홀로 밥을 먹는 이른바 '혼밥족'이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늘어나고 있다. 팀원들이 모두 함께 부장을 따라 조르르 나가던 점심시간의 풍경도 요즘은 바뀌었다. 점심시간 직전 '오늘은 개인적인 약속이 있다'며 홀로 나가는 직원들도 상당수다. 한 대기업 과장급 직원은 "몇 년 전만 해도 부서장이 돼지국밥 마니아라 여름이든 겨울이든 돼지국밥만 먹은 적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젊은 직원들부터 개인적인 약속을 잡아 나가니 점심시간은 홀로 보내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전했다.  약속이 있다는 핑계로 홀로 나가 여유롭게 점심을 즐기는 경우도 많아졌다. 점심시간 동안만이라도 혼자만의 여유를 찾고자 하는 직장인들이다. 이 덕분에 회사가 밀집한 근처 카페들은 1인 점심메뉴를 잇따라 내놓기도 했다.
 ②자기계발= 직장인 박 모씨는 출근길마다 지하철 좌석에 앉아 학습지를 푼다.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 손에 이끌려 꾸역꾸역 풀었던 바로 그 학습지다. 대신 과목이 수학에서 중국어로 바뀐 점이 다른 점이다. 박씨는 "중국어 학원을 다니다가도 회사 일정 때문에 빠지는 경우가 많아 결국 학습지로 바꿨다"며 "한시간 가까이 걸리는 출퇴근길을 이용해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화문에 위치한 한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서 모 씨는 점심식사 대신 회사 근처 스터디룸으로 향한다. 대학 시절 입사 준비를 했던 바로 그 스터디룸이다. 대신 이 곳에서 서씨는 광화문ㆍ종로 일대에서 근무하는 직장인들과 만나 50분간 영어로 대화를 나눈다. 서씨는 "영어회화를 매일 하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 점심시간을 활용한다"며 "점심은 스터디룸으로 이동하면서 샌드위치나 삼각김밥 등으로 해결한다"고 전했다. 끊임없는 자기계발을 요구받는 직장인들, 이들이 생각해 낸 생존 전략이다.
 ③카톡감옥= 부서카톡, 부장을 제외한 부서 카톡, 팀 카톡……. 요즘 직장인들은 기본적으로 3개의 카카오톡 메신저방을 갖고 있다. 부서원 전체가 함께하는 메신저 방, 업무가 같은 팀원들끼리만 소규모로 갖고 있는 메신저 방, 또 부장만 제외시키고 직원들끼리 대화하는 메신저 방이다. 부장을 제외시킨 메신저 방은 대부분 업무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하다.  직장 사람들간 과도하게 스마트폰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에 대해 대부분 불만은 갖고있지만, 의의를 제기할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오히려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거나,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을 깔지 않은 경우 빈축을 사기도 한다.  한 직장인은 "스마트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사용하지 않았고, 메신저 앱도 일부러 깔지 않았는데 부장은 물론이고 부원들이 상당히 불편함을 호소했다"며 "결국 버티다 못해 가입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법률 만능주의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퇴근 후 카톡금지법'이 발의된 것도 놀랄 만한 일은 아닌 셈이다.
 ④회식감소= "예고 없이 하는 회식이 가장 싫어요. 잡아놓은 약속들이 회식에 우선하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지만, 그렇게까지 회식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대리급 직원) "예전엔 저녁 직전 '번개'를 치면 남아서 함께하는 부원이 많았는데, 요즘엔 '번개'가 성공한 적이 한 번도 없네요. 가족같은 분위기는 확실히 사라졌어요." (부장)  자연스럽게 회식도 감소하고 있다. 일ㆍ가정ㆍ개인간의 균형을 중시하는 요즘 직원들은 예전처럼 부서 회식에 잘 동참하지 않는다. 예고되지 않은 회식일 경우 더더욱 그렇다.  과거 술한잔 걸치며 서운했던 점을 털어 놓기도 하고, 매번 듣는 다같이 잘해 보자는 잔소리를 전할 시간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명진규 기자 aeon@asiae.co.kr김은별 기자 silverstar@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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