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
단단히 여민 검푸른 홑겹의 옷. 눈부시고 찰진 속살을 지녔으나 굳이 옷섶을 풀어 교태를 짓지 않다.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지니려 하지 않았으니 향기는 고요하고 맛은 담백하다. 빼어난 몸을 고집하지 않고 서슴없이 제 몸을 점점이 나눠 한입에 먹기 좋도록 가지런히 누웠다.나이테처럼 내보인 속살의 파문은 옛사랑의 고백처럼 뭉클하게 아름답다. 김에서 밥으로, 밥에서 간간한 찬들로 넘어가는 맛의 회랑. 이 모든 것들 다 내주지만, 스스로를 매긴 값은 겸허하여 주린 이들의 넉넉한 한 끼가 된다. 어린 소풍가방 속의 너는 얼마나 설레는 별미의 유혹이었던가. 새벽에 그것을 말던 사람의 마음이, 점심에 그것을 푸는 사람의 마음으로 건너와, 가끔은 목메일듯 서럽기도 하던 그것. 이 나라 사람이라면 살아온 몸의 절반쯤이 너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리라. 처음엔 심심하지만 가만히 씹어 삼키면 단맛이 깊이 우러나 코끝까지 그윽해지던 기억, 우리는 어쩌면 김밥민족이 아니던가.혹자는 일본의 김초밥(후토마키)을 너의 아비로 잡기도 한다. 일제 때는 김밥을 노리마키(海苔?き)로 부르기도 했는데, 네모난 넓은 김을 깔고 밥을 얹은 뒤 식재료를 점점이 놓고 말아서, 먹기 좋도록 썰어먹는 것이 김초밥과 비슷했다. 게다가 김밥을 마는 대나무발 김발이도, 후토마키의 마키스와 닮았다. 넌 정말 일본 음식이냐. 식초로 간을 하는 김초밥과 참기름으로 간을 하는 김밥이 다르다곤 하지만, 참기름김밥이 나온 건 40년쯤 밖에 되지 않았다. 이미 국민음식이 된 너에게 민족의식까지 부여하려는 건 과한 욕심일까.혹자는 삼국유사에 복쌈(福裏)이란 대보름음식이 나오는데, 이 중에 김밥이 있다고 주장한다. 복쌈은 취나물과 배추잎으로 밥을 싸기도 하지만, 김으로도 쌌다는 것이다. 김에 대한 구체적 기록이 나오는 것은 조선시대 '경상도지리지'나 '동국여지승람'이다. 이 무렵에는 우리나리에서 김을 양식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런 것을 근거로 너를 겨레음식이라 말하는 건 좀 석연찮다. 요즘 형태의 김밥이 나오는 것은 한국전쟁 무렵인 1950년대이기 때문이다. 좀 더 개연성있는 해석은, 우리 고유의 김쌈이 통영의 충무김밥(1930년대 시작)처럼 면면이 전수되어 오다가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후토마키의 영향을 받으면서, 일신을 했고 차츰 우리 입맛에 맞게 진화해왔다고 보는 것이리라.'김밥천국'은 개별브랜드가 아니라고 한다.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브랜드를 내놨기에 누구를 원조로 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김밥천국의 감동적인 컨셉트는, 김밥 한 줄을 천원에 파는 '겸손한 가격'이었다. 천원이면 배부르진 않지만 허기를 끌 수 있다는 그 약속은, 이 나라의 빈 손 빈 주머니의 서민들에게 복음과도 같았다. 게다가 그 천원을 이유로, 맛이나 차림이 부실해지지 않았던 것도 미덕이었다. 천국은 '천원의 나라(千國)'이며, 김밥이 이룩한 천국(天國)이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김밥은 졸지에 콧대가 높아졌다. 다른 물가들이 오르니 저만 겸손 떨고 있을 처지가 아니었던가. 작년보다 5.2%가 뛰어, 물가상승 1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한줄에 6500원 짜리 프리미엄 김밥이 등장했다. 그야말로 김밥의 배신이다. 세상에. 곧 '김밥만(萬)국'이 나올 것 같다.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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