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술에서 진실을 찾는다…진술분석 기관 '바로센터'

[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2008년 5월, 검찰청 영상녹화 조사실에 앉은 12세 소녀 A양은 자신이 겪은 일을 차마 털어놓지 못하고 흐느끼기만 했다. 수 년 간 자신을 괴롭혀온 악몽 같은 기억을 떠올리는 건 고통스러웠다. 당시 대검찰청 디지털포렌식센터 소속이던 김미영 진술분석관(36)이 A양 앞에 앉았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김 분석관의 위로에 마음을 연 A양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의붓아버지한테서 수 십 차례 성폭행을 당한 일이었다. 가해자는 범행을 부인했고 목격자도 증거도 없었다. 검찰은 진술분석관의 인지면담으로 피해자 증언의 신빙성을 입증하려 했다. 의붓아버지는 결국 징역 4년형을 선고 받았다. 인지면담을 통한 진술분석관의 진술타당성 분석 보고서가 우리 법원에서 증거로 처음 채택된 결과다. 당사자의 진술 말고는 뚜렷한 증거가 없는 사건에서 진술의 신빙성은 유무죄 판단의 절대적인 기준이다. 인지면담으로 진술의 신빙성을 가리는 게 진술분석관의 일이다. A양 사건을 포함해 9년간 대검에 몸담으며 각종 형사사건에서 진술분석 업무를 하던 김 분석관이 지난해 5월 검찰을 떠나 같은 해 8월 뜻이 맞는 전문가들과 함께 '바로진술분석면담교육센터(이하 바로센터)'를 세웠다. 바로센터에서 김 분석관의 직함은 책임연구원이다.바로센터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만들어진 사설 진술분석 전문 기관이다. 김 책임연구원과 김경하 책임연구원(39), 대검 경력 4년의 정지은 연구원(34), 김혜진 연구원(29) 등 4명이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범죄심리학 석사 이상의 전문가다.

지난 4월 학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바로진술분석면담교육센터가 진행한 인지면담 교육 중 김미영 책임연구원이 교육 참가 학생과 함께 인지면담 시연을 하고 있다.

바로센터에는 주로 경찰이나 형사사건 변호인의 진술분석 의뢰가 들어온다. 최근에는 '세모자 사건' 수사 단계에서 사건 당사자들 사이의 관계를 분석하는 데 바로센터가 투입됐다. 진술분석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입증하는 데만 쓰이는 건 아니다. 가해자나 피고인 또한 자신의 방어권을 행사하기 위해 진술분석을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 가급적 많은 사람이 진술분석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도록 돕는 게 바로센터의 목표다. 유럽에선 진술분석이 오래 전부터 폭넓게 자리잡았다. 독일 대법원이 1955년 모든 성범죄 사건에 심리적 면담과 평가 기법을 사용하도록 하는 법률을 제정한 게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서 이 기법이 활용된 건 아직 10년도 안 됐다. 바로센터는 이런 현실을 감안해 범죄심리를 공부하는 학생들과 수사 기관의 실무자들을 대상으로 강연 및 교육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바로센터 연구원들은 22일 "진술분석이 이제 막 과학적 기법으로 인정받는 상황"이라면서 "신뢰성과 타당성을 담보할 수 있는 분석기법으로 진술분석을 우리나라에 정착시키고 싶다"고 말했다.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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