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서]기업범죄 엄히 다스려야

김창수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가습기 살균제 사건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지금까지 사망자 수가 200명이 넘고 직간접 피해자의 수가 수십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기업범죄는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나 작년에 불거진 폭스바겐의 경유차량 배출가스 조작 사건 등과 같이 기업의 제품과 관련된 범죄뿐만 아니라, 미국의 엔론(Enron) 월드컴(Worldcom)의 회계조작 사건과 같이 업무수행 과정에서의 부정 등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경제행위의 양상이 계속 다양해지는 상황에서 이러한 경제범죄의 발생은 필연적이다. 중요한 것은 이에 대한 적절한 대처 및 예방이다. 미국은 회계조작 사건 이후 회계부정을 종합적으로 단속하기 위해 2002년 사베인즈 옥슬리 법을 통과시켜 기업회계 개혁 및 투자자 보호를 강화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검찰 수사로 현재까지 밝혀진 것만 고려하더라도 기업범죄에 대한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어떠한 사안이 발생했을 때 우선 중요한 것은 그 사안에 대한 지식이다. 외국의 경우에는 기업범죄에 대한 매우 다양한 연구들이 진행되어 왔으나 한국에서는 이에 대한 연구가 매우 미미하다. 그러다 보니 기업범죄의 적발 단계에서도, 그리고 적발된 건을 처리하는 단계에서도 문제가 많다. 그 이유는 연구를 위한 기본 자료가 매우 부족하고 사법연감이나 검찰백서와 같이 자료가 있는 경우라도 내용이 매우 부실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외부에 대한 자료 노출을 꺼리는 공무원들의 태도 때문에 별 것 아닌 문서도 보안을 핑계로 접근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체계적인 자료의 정비와 자료에 대한 접근성 개선이 이뤄져야 효과적인 기업범죄 시스템 구축을 위한 기반을 닦을 수 있다.다음으로 기업범죄에 대한 관대한 태도가 문제다. 일반범죄는 해당 개인과 그와 관련된 몇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기업범죄는 매우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좀 더 무겁게 양형을 집행해야 하지만, 이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 개인이 느끼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관대한 처분이 내려지는 경향이 있다. 미국에서 1978년부터 2006년까지 금융감독 당국과 법원에서 회계부정으로 조사를 받은 임원들의 범죄 후 경력을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93%가 조사 진행 중 또는 종료 후에 해고되었고, 28%는 형사처벌을 받아 평균 4.3년을 복역했다. 특히 최고경영자(CEO)의 경우 해임 후 다른 회사로의 재취업이 불가능했고 스톡옵션을 행사할 기회도 상실했다.이에 비해 한국의 한 연구에서 기업범죄를 범한 지배주주와 전문경영인의 유죄판결 확정 후 경력 변화를 보았더니 38명 중 22명이 범죄를 저지른 회사나 동일 기업집단의 다른 계열사로 복귀하더라는 것이다. 또한 경제개혁연대가 2000년에서 2007년 사이에 기업범죄로 기소된 82명의 전문경영인에 대해 조사한 결과 1심에서 약 94%, 2심에서는 전원이 집행유예로 풀려 나왔다. 재벌과 관련이 있을 경우 양형의 차이가 나는 점도 문제이다. 2007년부터 2014년 사이에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유죄판결을 받은 252명의 범죄자에 대해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재벌과 관련이 있을 경우 집행유예를 받을 가능성이 일반 경제범죄보다 10% 높아진다. 재벌의 경우 사법부가 국민경제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염려하는 점은 이해가 가나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엄중히 다루어야 한다. 또한 좀 유능하다는 변호사들이 재벌에 포획되어 재벌의 경제력 집중 폐해가 나타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마지막으로 정부의 태도가 변해야 한다. 이번 옥시 사건의 경우에도 그간 이 사건과 관련된 정부의 무능과 안이한 대처에 대한 성토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인명에 대한 사건은 상식적으로 판단하더라도 보수적으로 정책을 집행해야 할 텐데 유해성에 대한 논란이 있을 때 크게 중요하지 않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소홀히 대처를 하고 급기야 수백 명의 사람이 사망하고서야 뒷북을 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언제나 좀 국민들이 믿을 수 있는 정부가 될까? 이번 옥시 사건을 계기로 기업범죄에 대한 전반적 검토가 시작되기를 희망한다.김창수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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