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기업 CEO를 만나다 - 50. 이성진 레이캅코리아 대표고령화사회 노인 입소문 타고 대박3000억원 시장 점유율 50% 넘어의사가 만든 제품, 소비자 신뢰 주효
[아시아경제 조강욱 기자] 지난 2012년 일본시장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주위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심지어 미친 거 아니냐는 말까지 들었다. '가전왕국'이라고까지 불리며 국내 대기업도 발을 못 붙이는 일본에 한국의 중소기업이 성공할 수 있겠냐는 반응이었다. 그것도 시장에서 생소한 '침구살균청소기'라는 제품인데 말이다.이성진 레이캅코리아 대표는 "일본은 주기적으로 이불을 털어 말리는 문화를 갖고 있는데 최근 미세먼지로 대기오염이 심해지고, 고령화로 인해 노인들이 직접 무거운 이불을 말리는 것이 어려워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기회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고 말했다.당시 일본 소비자들은 기존에 없던 침구살균청소기 제품에 대해 신기해하는 반응을 보였다. 이후 제품을 사용해본 소비자들 사이에서 "써보니 좋더라"라는 입소문이 퍼졌고 급기야 일본 방송사의 정보프로그램에도 소개되며 큰 반향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실제 2013년 이 회사의 매출은 전년 450억원보다 3배 뛴 1300억원을 기록했다. 현재 3000억원으로 추정되는 일본 침구청소기시장에서 이 제품의 점유율은 50% 이상이다.일각에서는 이 같은 레이캅의 성공에 이 대표의 첫 직업이 의사였던 점이 한몫을 했다고 한다. 의사가 만든 제품이라는 점이 소비자의 신뢰를 끌어올리는데 보탬이 됐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아버지가 운영했던 부품소재 전문기업 부강샘스를 물려 받은 것도 성공의 지름길이었다고들 말한다.하지만 이 대표는 "아버지의 기업을 이어받으려고 했더라면 처음부터 의대를 가진 않았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의사를 꿈꿨지만 현실과 이상과의 괴리를 느꼈던 그는 '커리어 체인지(career change)'를 통해 새롭게 출발하고자 미국 MBA 유학길에 올랐다. 경영학 석사 취득 후에도 아버지의 기업은 쳐다보지 않았고 100회 이상의 구직 인터뷰 끝에 글로벌 제약기업인 존슨앤존슨에 입사했다. 적성에 맞았던 걸까. 그의 실적은 수직상승했고 불과 3년도 채 되지 않아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차기 책임자로 지목됐다. 이 대표는 "아버지 사업을 잇기로 결정했을 때보다 오히려 이때 더 잘 나갔다"고 귀띔했다.어느날 아버지로부터 회사를 운영해달라는 부탁을 받았고 고민 끝에 파격적인 대우를 제시하는 존슨앤존슨의 제의를 뿌리치고 한국에 돌아왔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당시의 금융위기 여파를 피할 수 없었던 회사는 한 마디로 위기에 빠져 있었다. 귀국하자마자 연대보증 서류에 사인하라는 은행들의 빚 독촉이 이어졌고 대출을 받기 위해서는 본인의 의사 면허증까지 담보로 잡혀야 했었다. 이 때문에 그가 싫어하는 단어 중 하나는 '금수저'다.이 대표는 "당시 사업으로는 답이 보이지 않았다"면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철학과 브랜드를 가진 혁신적 제품을 만드는 길 뿐이었다"고 토로했다.2008년 첫 제품을 선보인 이후 30여개국을 돌아다닌 끝에 일본시장에서 성공을 거뒀지만 위기는 찾아왔다. 시장 규모가 커지자 글로벌 가전업체들도 미투 제품을 선보이며 뛰어들었다. 광고와 마케팅에 힘을 쏟았지만 자금력을 앞세운 거대 기업들을 따라잡기는 역부족이었다. 이 때문에 2014년 1800억원을 넘어섰던 매출이 지난해에는 1100억원으로 급감했다.이 대표는 "글로벌 가전업체들의 진출은 우리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지만 매출이 감소한 것은 방향성을 잘못 잡았기 때문"이라며 "우리가 왜 이 제품을 해야겠다고 결정했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고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마음먹었다"고 했다.침구살균청소기를 개발해 새로운 제품군(群)을 형성해냈던 것처럼 바로 '혁신'을 추구하자는 의미였다. 레이캅은 내년부터 매년 기존에 없던 혁신 제품군을 1가지씩 선보인다는 목표로 제품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현재 개발 중인 것은 수면에도 도움을 주는 제품이라는 귀띔이다.이 대표는 "레이캅은 이제 침구청소기 전문기업을 넘어서 글로벌 건강가전 전문메이커를 지향하고 있다"면서 "소비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본질에 맞는 혁신 제품을 개발하는 이노베이터(Innovator)이자 파이어니어(pioneer) 기업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조강욱 기자 jomarok@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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