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역할論, 13일의 유세

[아시아경제 홍유라 기자]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대표의 4·13 총선 선거 운동은 그의 '대중적 가능성'을 시험하는 바로미터였다. 이제 5선의 국회의원인 김 대표이지만 비례대표로만 다섯 번째다. 정치인으로서 인지도는 적었던 이유다. 때문에 지원 유세의 전 과정은 김 대표가 대중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과정 그 자체였다. 김 대표의 처음은 어색했다. 선거 운동 시작일이었던 지난달 31일, 김 대표는 정장 바지에 검정 구두를 신고 당시 정세균 후보(서울 종로) 지원에 나섰다. 첫 지원 유세라 언론의 관심은 집중됐지만, 김 대표의 거리유세는 채 10분이 되지 않았다. 시민들과 악수하며 인사를 나눴지만 그의 입은 떨어지지 않았다. 어색한건 시민들도 마찬가지였다. 김 대표와 악수를 나눈 한 유권자는 "김종인이란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사실 얼굴은 잘 몰랐다"며 얼떨떨해 했다. 옆에선 당직자는 "안녕하세요. 김종인 대표님입니다"라며 김 대표를 직접 소개했다. 그렇기에 김 대표의 유세는 '거리보다 무대'에 방점이 찍혔다. 평소 회의에서도 원고를 읽기보다 즉석에서 생각을 말하는 데 능수능란한 김 대표다. 마이크를 잡은 그의 목소리에선 자신감이 엿보였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김 대표의 유세는 진화했다. 복장도, 행동도 변했다. 김제전통시장에선 곶감과 생율을 구입하며 "잔돈은 안 받아야지"라는 농담을 먼저 건내는가 하면, 광주 첫 주말 집중유세에선 더민주의 로고송인 '더더더'에 맞춰 춤을 추기도 했다. 유세 중반부에 접어들면서 김 대표의 정장 바지는 청바지와 면바지로, 검정 구두는 회색 로퍼로 바뀌었다.
다소 멋쩍어 하던 김 대표는 점차 망가지기도 서슴지 않아했다. 지난 3일 당시 진성준 후보(서울 강서을) 지원유세에선 투표를 독려하며 파란 가발을 썼고, 지난 8일 당시 박주민 후보(서울 은평갑) 지원유세선 2번이 달린 머리띠를 직접 착용했다. 77세 노인이자 한국의 원로 경제학자인 김 대표에게서 그동안은 볼 수 없던 '깜짝 놀랄 만한' 이색 행보였다. 점차 유세 현장 곳곳에서도 열성 지지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한 중년 여성이 김 대표의 팬이라며 박카스를 건냈다. 또 다른 남성은 "경제를 살려달라"며 먼저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김 대표는 유세 막바지에 이르며 후두염 진단을 받는 등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강행군을 지속했다. 그렇게 선거는 치러졌고, 더민주는 123석을 얻어 원내 1당으로 올라서는 기염을 토했다. 이제 김 대표는 비대위가 아닌 온전한 당 대표로 공공연하게 언급되는 상황이다. 그의 당 수장으로서 역할에 반신반의 하던 인사들도 이젠 수긍하는 모양새다. 나아가 김 대표의 대권 가능성까지 조심스럽지만 꾸준히 제기된다. 다만, 한 당직자는 선거가 끝난 직후 "유세를 다녀보면 (김 대표가) 대중 정치인은 아니었다"라며 "당 대표론 괜찮지만 대통령은 아니란 걸 대표 스스로도 이번 선거를 통해 느낀 것 같다"고 말했다. 향후 김 대표의 행보가 어디를 향할지 흥미롭다. 홍유라 기자 vandi@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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