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시민인권보호관실 직장내 성희롱·인격모독 등 인권침해 사례집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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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여자 친구와 여행을 떠나는 부하직원에게 직장 상사가 '거사 잘 치르세요'라고 건넨 말은 성희롱일까, 아닐까? 가해자는 단순 농담으로 여기고 한 말일 수 있지만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꼈으므로 성희롱이 맞다는 게 서울시 시민인권보호관의 판단이었다. 시 시민인권보호관이 17일 공개한 '2015년 서울시 시민인권보호관 인권침해 결정례집'에 실린 한 사례다. 시의 한 부서에 근무하는 A주무관이 여자 친구와 함께 여행을 떠나려 휴가를 내고 상사 B씨에게 인사를 한 게 발단이었다. B씨는 "거사 잘 치르고 오세요"라고 말했고, 이에 성적 수치심을 느낀 A씨는 "성희롱을 당했다"며 진정서를 냈다. 시민인권보호관실은 B씨가 "잘 갔다 오라고 축하해준 것일 뿐"이라며 해당 발언 사실을 부인하지만 개연성이 높고 업무와 관련이 있으며 당사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꼈으므로 직장내 성희롱이 맞다고 판단했다. 이 결정례집에는 이밖에 다양한 형태의 서울시 공무원들의 직장내 성희롱ㆍ성폭력 실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난해 1월 임용된 신입공무원 C씨는 입사 후 5개월 쯤 지난 지난해 6월 소속 부서 상급자인 D씨 등과 저녁을 먹고 노래방을 갔다가 성추행을 당했다. 시민인권보호관실의 조사 결과 C씨는 "저녁식사를 하고 노래방에 간 자리에서 D씨가 자신의 옆에 앉아 등을 쓰다듬듯 만지고 손을 잡고 허벅지를 만졌다"고 진술했다. D씨를 피하기 위해 떨어져 앉자 옆에 앉으라며 어깨가 드러날 정도로 상의를 잡아 당기는 일도 있었다. 반면 D씨는 "기억나는 것이 없다"며 "6월 16일 오전에 C씨에 사과 이메일을 발송했다"고 답했다. 시민인권보호관은 목격자가 없지만 C씨가 피해 직후 동료 등에 피해사실을 전달한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성희롱 사실이 있었다고 판단해 D씨에 대한 인사 조치 및 C씨에 대한 유급 휴가ㆍ2차피해 예방 조치 등을 서울시장에 권고했다. 성희롱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전형적인 '2차 피해' 사례도 있다. 단속요원인 E씨는 2014년 체육행사가 끝난 후 동료 F씨로부터 성폭력을 당해 고소를 한 상태였는데, 이를 알게 된 서울시의 G주무관은 E씨를 불러다 놓고 공무원 조직에 먹칠을 했다는 등의 모욕을 줬다. 그는 E씨에게 "우리 공무원들에게 피해를 주신 것 아시죠?", "선생님이 원인 제공을 하지 않았습니까?", "남자를 따라가지 않았습니까?", "선생님은 공무원 조직에 먹칠을 한 사람입니다" 등의 발언을 해 2차 피해를 가했다. 행정적 관행 뒤에 숨은 차별과 표현의 자유 침해 사례도 있다. 성소수자 관련 전시라는 이유로 이미 심의를 거쳐 적법하게 선정된 사업에 대한 예산 지원을 거부하거나 '10대의 성'을 주제로 한 행사 홍보물에 적힌 '키스, 피임' 등 표현이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시립시설 대관을 불허하는 등의 사례다. 이번 결정례집에 포함된 것은 외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시민인권보호관이 지난해 1년간 인권침해 신고 106건을 접수해 사실임을 확인한 뒤 서울시장에게 '시정 권고' 결정을 내린 10건이다. 성희롱과 언어폭력, 직장내 괴롭힘 등이 6건으로 가장 많았다. 지난 2014년 9월 성희롱과 언어폭력 사건에 대한 조사를 내부 부서가 아닌 독립적 옴부즈만인 시민인권보호관이 전담하게 되면서 그동안 꺼려왔던 직원들의 신고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시는 당시 '서울시 성희롱 언어폭력 재발방지 종합대책'을 시행하면서 직장 내 성희롱과 언어폭력 사건을 시민인권보호관이 전담조사하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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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시는 2013년 1월부터 지자체 최초로 '시민인권보호관' 제도를 도입했다. 시민인권보호관은 인권분야 전문가들로, 서울시 인권기본조례에 근거해 시 소속기관과 시의 지원을 받는 각종 시설 등에서 업무수행과 관련해 발생하는 인권침해사건에 대해 독립적으로 조사하고 서울시장에게 시정권고한다. 현재 3명(임기제 공무원)이 활동 중이다.시 시민인권보호관실 관계자는 "결정례집이 서울시와 소속 기관, 관련 분야에서 인권 행정 지침서로 적극 활용하기를 바란다"며 "작년 한 해의 노력과 결실을 되돌아보고 올해도 시민의 기본 권리인 인권이 차별받거나 침해당하지 않도록 찾아가는 인권행정을 한층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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