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아인슈타인 학교 성적표 뒤져보니

20세기를 대표하는 천재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누구나 장난기 어린 얼굴과 '상대성이론'으로 대표되는 그의 과학적 업적을 기억하고 있습니다.그런데 천재였던 그가 4살이 되도록 말도 제대로 못하는 지진아였고 학교 성적이 좋지 않아 대학 입시에 실패했다는 얘기, 들어보셨나요?이런 일화도 있습니다.아인슈타인의 성적표에 교사가 "이 학생은 앞으로 어떤 일을 해도 성공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됨"이라고 써서 보내자 그의 어머니는 "너에게는 남과 다른 특별한 능력이 있다. 남과 같아서 어떻게 성공하겠니?"라고 용기를 줬다고 합니다.세상을 바꾼 천재 물리학자가 사실은 열등생이었다는 이 이야기들은 학업 성적과 인생에서의 성과는 별 관련이 없다고 할 때 자주 인용됩니다. 성적이 뒤처진 학생들에게 희망을 주기도 합니다. 천재도 획일화된 교육환경에서는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주장도 뒷받침 합니다.그런데, 이 얘기들은 사실일까요?그가 딱딱한 학교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아인슈타인은 1886년 뮌헨의 루이트폴트 김나지움에 입학했다. 그는 수학과 과학 수업은 좋아했지만, 라틴어와 그리스어에는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그 학교는 엄격한 독일식 훈육을 표방하고 있어서 아인슈타인은 학교생활에 회의를 느꼈다" - '과학기술의 개척자들' 중 하지만 나중에 발견된 아인슈타인의 성적표를 보면, 그는 11살 때 대학과정의 물리학을 이해하고 있을 정도로 수학과 물리학에 재능이 있었습니다. 라틴어와 그리스어 성적도 뛰어났다고 합니다.뮌헨 루이트폴트 김나지움의 빌라이트너 교장은 1929년 베를린의 한 신문이 아인슈타인의 학교성적이 보잘것없었다고 보도하자 이에 항의하기 위해 이 성적표를 신문사에 보냈습니다.스위스의 아르가우 칸톤 학교를 다닐 때도 수학과 물리학 성적은 가장 높은 1등급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학기에는 6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성적을 표시하는 방법이 점수제로 바뀌었고 만점은 6점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기록이 훗날 6등급으로 해석돼 아인슈타인 열등생설의 진원지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성적과 별개로 그는 남들과 다른 특별한 학생이었습니다. 그는 10대 때 이런 말들을 남겼습니다."행복한 사람은 현재에 만족하기 때문에 미래를 많이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정신이 맑을 때면 내가 꼭 위험을 외면하려고 사막 모래에 머리를 처박는 타조처럼 느껴진다" -'아인슈타인이 말합니다' 중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이경희 디자이너 modakid@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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