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 트루퍼' 중 - 신영숙 김영주 홍지민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아시아경제 임온유 기자] 초등학교 동창생 미녀 육총사, 가락동 운동모임 삼인방, 20대 딸 손잡고 온 50대 엄마, 남자들 빼고 시댁 식구 소집한 맏며느리…. 지난달 24일 오후 7시30분쯤, 뮤지컬 '맘마미아'의 첫 공연을 앞둔 서울 잠실동 샤롯데씨어터에 중장년 여성 관객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1~3층 로비를 가득 메운 이들은 5년 만에 돌아온 맘마미아가 어지간히 반가운 모양이었다. 모두 들뜬 기색이었다. 뮤지컬의 주 관객층이 20~30대 여성인 점을 떠올리면 색다른 모습이다. 2004년에 한국에서 첫 공연을 한 맘마미아는 뮤지컬 시장의 '블루오션'으로 여겨지던 중장년 관객을 극장에 끌어 모았다. 시쳇말로 '중년 저격 뮤지컬'인 셈이다. 비교적 주머니 사정이 나은 그들이 가족, 친구들을 끌고 오면서 맘마미아는 10년 넘게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 제작사 신시컴퍼니의 박명성(53) 대표가 신작을 발표할 때 마다 "이 작품 실패하면 맘마미아 하면 돼"라고 할 정도다.
비결은 뭐니 뭐니 해도 스웨덴 팝 그룹 '아바(ABBA)'의 흥겨운 노래다. 아그네사 팰트스코그(66), 애니프리드 린스태드(71), 베니 앤더슨(70), 비요른 울바에우스(71)가 모여 만든 아바는 1970~1980년대 세계 음악 차트를 휩쓸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 뮤지컬은 '맘마 미아'(Mamma Mia) '허니 허니'(Honey Honey) '댄싱 퀸'(Dancing Queen) '아이 해브 어 드림'(I Have a dream) '머니 머니 머니'(Money Money Money) 등 아바의 히트곡 스물두 곡을 엮어 만든 작품이다. 이처럼 기존에 있던 노래에 스토리만 더한 작품을 '주크박스 뮤지컬'이라 한다. 관객은 공연 시작 전 아바 메들리가 맛보기로 나올 때부터 어깨를 들썩였다. '전부터 아바를 아느냐'는 물음에 20대 초반부터 아바의 팬이었다는 50대 여성 관객이 대답했다. "우리 세대에 아바 모르면 간첩이죠. 아 간첩도 알려나?"
'허니 허니' 중 - 박지연(사진=신시컴퍼니 제공)
뮤지컬의 내용은 이렇다. 그리스에 속한 지중해의 외딴 섬, 젊은 날 아마추어 그룹의 가수로 화려하게 살던 도나는 지금 낡은 모텔의 주인이다. 주택 부금 갚기에 여념 없는 그녀에게는 남편 없이 낳은 스무 살 난 딸 소피가 있다. 내일은 소피가 약혼자인 스카이와 결혼하는 날. 그런 도나에게 과거 사귄 남자 샘, 해리, 빌이 찾아온다. 어떻게 된 일일까. 알고 보니 생부를 찾고 싶은 소피가 도나의 젊은 시절 일기장을 뒤져 '아빠 후보'들에게 모조리 청첩장을 보낸 것이다. 도나는 소피의 결혼을 축하하러 온 그룹 멤버인 타냐와 로지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 "나도 아빠가 누군지 모르겠어!" 이번 공연에서 도나는 배우 최정원(47)과 신영숙(41), 타냐는 전수경(50)과 김영주(42), 로지는 이경미(55)와 홍지민(43), 소피는 김금나(28), 서현(25), 박지연(28)이 맡았다. 맘마미아는 1999년 4월 영국 웨스트엔드의 프린스 에드워드 씨어터에서 처음 무대에 올랐다. 이 작품은 프로듀서 주디 크레이머(59)가 베니 엔더슨과 비욘 울바우스에게 처음 제안해 만들어졌다. 영국 극작가상을 받은 캐서린 존슨(59)이 대본을 쓰고 연극계에서 잔뼈가 굵은 필리다 로이드(59)가 연출을 맡았다. 재미있는 사실은 크레이머와 존슨, 로이드 모두 동갑내기라는 점이다.이 특별한 조합이 만든 맘마미아는 고전작품의 재공연에 지루해하던 웨스트엔드의 분위기를 뒤집었다. 입석까지 매진시키며 박스 오피스 기록을 연일 갈아치웠다. 여세를 몰아 2001년에는 미국 브로드웨이로 건너가 성공했다. 9.11 테러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그곳에서도 객석점유율을 99%까지 끌어올리며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맘마미아를 시작으로 주크박스 뮤지컬이 작품 형태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는 친숙한 음악을 활용해 작품을 조금은 쉽게 흥행시키려는 제작자들의 의도가 숨어 있었다. 비틀스의 노래로 엮은 '렛잇비'(Let It Be), 퀸의 노래로 만든 '위 윌 록 유'(We Will Rock You)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 작품도 있다. 작곡가 이영훈(작고)의 노래로 엮은 '광화문 연가', 김광석(작고)의 노래로 만든 '바람이 불어오는 곳' 등이다. 하지만 맘마미아처럼 전 세계적으로 롱런하는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다.
'머니 머니 머니' 중 - 최정원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주크박스의 성공과 실패는 '음악과 스토리의 연결 여부'에 따라 갈린다. 맘마미아 속 노래와 이야기는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주택 부금에 지친 도나는 낡은 청 멜빵바지를 입고 '머니 머니 머니'를 부르며 세상을 한탄한다. 돈 많고 섹시한 중년 타냐는 젊은 남자가 대시해오자 '더즈 유어 마더 노?'(Does Your Mother Know; 네 엄마는 네가 이러는 걸 아니?)를 부르며 코웃음 친다. 도나에게 아직도 애틋한 마음이 남은 샘은 자신을 구원해 달라며 'S.O.S'를 친다. "'이 노래'를 넣기 위해 '이 장면'을 끼워 맞췄군" 하는 억지스러움이 없다. 자연스러운 연결 덕분에 관객은 장면마다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다. 딸을 시집보내는 도나와 공감하고 아직도 젊은 남자에게 청혼 받는 타냐에게서는 부러움을 느낀다. 감정에 무뎌진 로지를 보며 '나도 그런가' 하고 스스로를 되돌아보기도 한다. 도나, 타냐, 로지가 찬란했던 과거를 떠올릴 때가 압권이다. 그녀들이 촌스러우면서도 어딘가 멋진 '아바 의상'을 입고 '수퍼 트루퍼'(Super Trouper)를 열창할 때 관객의 흥이 절정에 달한다. 그들은 아마 추억의 음악에 젖어 자신의 풋풋했던 젊은 시절을 떠올리고 있을 테다.맘마미아는 배우와 관객 모두를 주인공으로 만든다. 커튼콜을 할 때 조명이 배우와 관객 모두를 비추도록 한 연출에는 아마 이런 의도가 담겼을 것이다. 배우들은 얌전떨던 관객을 일으켜 세워 아바의 '댄싱퀸'에 맞춰 춤추게 한다. "신나게 춤춰봐 인생은 멋진 거야 우우우~ 기억해 넌 정말 최고의 댄싱퀸." 임온유 기자 ioy@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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