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여담]단팥빵

류정민 사회부 차장

그곳의 단팥빵은 특별하다. 가장 큰 특징은 '묵직함'이다. 다른 빵집 단팥빵보다 특별히 크기가 큰 것도 아니다. 비슷한 크기에 무게감이 다른 원인, 바로 단팥의 양이다. 빵 껍질은 얇은 편인데 공간은 단팥으로 꽉 채워져 있다. 너무 달지도 않다. 빵은 쫄깃하면서도 고소하다. 그곳 단팥빵을 접한 사람은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문제는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야 단팥빵을 살 수 있다는 점이다. 빵집 앞에는 날마다 긴 줄이 늘어서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단팥빵을 사려는 이들의 행렬은 변함이 없다. 빵집 근처에 사는 이들도 있지만, 다른 지역 사람도 많다. 수십 킬로미터 거리에서 온 이들도 있다. 편안한 복장에 배낭을 멘 그들은 영업시간 1~2시간 전에 도착해 대기 줄의 앞자리를 차지한다. 평일 오전 10시, 토요일 오전 9시에 문을 여는데 문을 열고 1시간 정도만 지나면 매장의 빵은 다 팔려 나간다. 많은 사람이 줄을 서지만, 포장하고 계산하는 시간을 고려하면 1시간은 금방이다. 줄을 선 이들은 자기 앞에서 다 팔리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기 마련이다. 자기 차례가 오면 단팥빵 수십 개를 구매해 양손 가득 들고 매장을 나서는 게 일반적인 모습이다. 성질 급한 사람은 아예 매장에 진열된 빵 쟁반을 통째로 들고 구매 의사를 밝히기도 한다. 어렵게 단팥빵 구매에 성공한 이들은 의기양양, 표정에 만족감이 흘러넘친다. 한참을 기다리다 결국 단팥빵 구매에 실패한 이들은 낙심한 표정으로 뒤돌아선다. 대형 프랜차이즈 공세에 개인 가게는 버티기 힘든 게 현실인데 그 빵집은 예외다. 그 빵집은 넓지도 않다. 성인 10여 명이 서 있으면 꽉 찰 정도의 공간이다. 손님이 그렇게 많은데 매장을 대폭 확장하고 단팥빵 생산량을 늘리면 돈을 쓸어 담지 않을까. 일본에서 제빵 기술을 배운 그 집 주인은 협소한 매장을 고집(?)한다. 영업 시작 1~2시간 만에 준비한 모든 빵을 판 뒤 가게 문을 닫는 것도 변함이 없다. 자신의 가게가 널리 알려지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TV 맛집 소개 프로그램에 자신의 빵집이 알려질까 걱정할 정도다. 그의 독특한 '경영 철학'에 이 시대 자영업자의 생존 비법이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장사하면서 욕심을 제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눈앞의 이익을 좇지 않고, 우직하게 한 길을 걷는 것도 어렵다. 하지만 화려함보다 내실을 중시하는 모습을 꾸준히 실천할 수만 있다면 '불황의 그늘'을 이겨낼 길이 열릴지도 모른다. 류정민 사회부 차장 jmryu@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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