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국기자
어우동 복장을 한 레이싱걸의 섹시한 포즈.
그러니 여기서라도 대답하는 것이 좋겠다. 호기심의 본능적 존재와 호기심의 충족은 다른 문제이다. 많은 호기심들은, 실현되지 않은 채 알맞은 긴장으로 숨어있는 게 필요할 수도 있다. 저 무차별적인 개방은 일종의 폭력이며 성적인 학대에 가깝다. 성에 관한 이런 비주얼 스토리가 난무하는 세상은, 성에 대한 해이함이나 방종을 부를 수도 있지만, 그보다 성에 대해 지니는 원초적인 호기심과 그것을 스스로 억제하는 제어력을 함부로 낭비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게 더 무서운 것인지도 모른다. 이 동영상들은 포르노의 문제점을 그대로 가진다. 포르노는 성을 1인치도 숨겨놓지 않고 다 까발리려 하지만, 결국 성에 대해 제대로 아무 것도 말하지 못한 것일 수 있다. 이미지가 상상력을 착취해버리기 때문에, 결국 성을 이루는 가장 신비한 구성체인 '상상'이 고갈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성적 호기심은 '악'이 아니라 제어가 필요한 본능이다. 함부로 치마를 걷어서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호기심 상태로 두어야 할 무엇이다. 그 동영상은 사실상 성적 신비감을 강탈하는 노상강도에 가깝다.자제력을 때려눕혀 호기심의 팔을 들어준다고 욕망의 참된 만족도가 증가하지 않는다. 그런 사실을 그 동영상 스스로도 보여주고 있다. 장면들은 곧 지루해졌다. 너무나 뻔한 동작이었고 보지 않아도 예측가능한 결과를 반복해서 보여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저 동영상이야 말로 성에 대한 얕은 이해가 낳은 오해의 상품이다. 한 여성의 인격과 존재감이 결부된 성적 의미가 아니면, 의상학적(?), 혹은 인체공학적, 해부학적 관심 이외엔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치마는, 저 동영상이 보여주려는 것에 비하면 훨씬 아름답지 않은가.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