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다 테츠야, 일기;1968년8월22일, 1968, 실크스크린, 목판, 82×82cm
경기도미술관, 日판화전현대미술로 재탄생한 '우키요에'이우환 작가 판화도 전시[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빛바랜 은색 톤이 가득한 화면 속 인물들. 유가타(일본의 전통 의상)를 입은 두 남자는 서양 바로크풍 소파에 앉아 있다. 연둣빛 소파를 중심으로 세일러복을 입은 소녀, 넥타이를 맨 남성, 캐주얼한 차림을 한 사람들이 빙 둘러 앉거나 섰다. 오른편에는 소나무 분재도 있다. 소파 안장과 등받이를 제외하면 모두 흑백으로 형태가 드러난다. 인물들 주변에는 가로로 긴 네모 칸에 각각의 이름, 생년월일, 가족관계가 글자로 새겨졌다. 일본 현대판화가 노다 테츠야(76)의 작품이다. 1968년 제작된 이 판화는 일본 전통 목판화에 실크스크린 기법을 더해 제작했다. 실크스크린은 사진원판을 활용해 쉽게 도안을 만들 수 있는 기법으로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1928~1987년)도 자주 사용했다. 노다가 단체사진을 모티브로 해 선보인 '일기'라는 이 판화 시리즈는 당시 대단히 특이한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다. 근세 일본회화의 정취와 함께 평면적이고 그래픽한 서양의 팝아트적 요소가 섞여 있다. 일본 미술사에서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로 이어지는 시기는 '판화의 황금시대'로 불린다. 17세기 일본 에도시대 서민층에서 발흥한 풍속화 '우키요에'의 국제적인 유명세와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과거와는 다른 실험정신과 독자적이며 색다른 표현세계가 전개됐다. 일본 정부가 자국의 현대판화예술을 알리려는 정책적 지원도 한몫했다. 1957년 도쿄판화비엔날레가 열리면서 일본 현대판화는 기법이나 주제 면에서 국제적 감각을 갖춰나갔다. 1960년대 이후 일본 사회는 텔레비전과 자동차, 에어컨 등 가전제품이 일반 대중의 소비를 자극하고, 고도의 경제성장을 과시하던 풍요의 시기였다. 영화와 만화, 포스터, 간판 등 시각 이미지도 넘쳐났다. 1970년대 판화는 이 같은 영상과 이미지의 시대를 반영하며 작가의 예술적 실험을 표현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1970년대 일본 판화 작품들이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에 있는 경기도미술관 기획전시실에서 전시되고 있다. 일본국제교류기금과 경기도미술관이 공동 기획해 '영상과 물질'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영상' 이미지를 통한 현대사회의 표현과, 종이나 판 또는 화면에 새겨지는 '물질' 자체를 새롭게 바라보는 실험을 판화에서 만날 수 있다.
기무라 코스케, 현재위치_ 존재A, 1971, 실크스크린, 석판화, 73×104cm
이우환, 기항지(기착지) 1, 1991, 석판화, 89×79cm
우끼요에, 가츠시카 호쿠사이 작
기무라 코스케(80)가 1971년 실크스크린과 석판화를 겸용한 작품에는 잡다한 사진영상의 단편들이 나열되거나 중첩돼 있다. 정보 과다의 현대사회가 지닌 떠들썩함과 우울함이 배어나온다. 가와구치 타츠오(76)는 녹슨 못이나 꺾쇠를 넣은 종이를 뜨는 식으로 작품을 제작해 판화 개념을 확대했다. 가와구치는 1960년대부터 '물질과 인간은 등가'라는 사고를 기본으로, 물질과 인간 또는 다른 물질 간의 상호관계를 주제로 작품을 제작해 왔다. 이는 일본의 아방가르드 미술운동인 '모노하(物派)'와도 연결된다. 일본에서 '모노하' 작가이자 평론가였던 한국 작가 이우환(80)의 판화도 나와 있다. 화면에서 잉크와 종이가 이루는 여백과 긴장의 미가 돋보인다. 지난 2일 이번 전시와 관련해 강의를 한 다키자와 쿄지(54) 일본 도쿄 마치다시 국제판화미술관 학예원은 "일상 속에 흔하게 소비되는 이미지를 이용해 우끼요에와 같은 서브컬처로 일본의 독자적인 팝아트가 된 것이 바로 일본현대판화"라고 했다. 다키자와와 대담을 한 일본 근현대 미술사가 최재혁씨(43)는 "판화는 회화이자 조각이며, 원본이 있고 복사본이 있다. 판화의 주제는 꽤 논쟁적인 것들이 많고, 미디어의 역할을 해 왔다"며 "이번 전시는 판화라는 장르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며, 판화를 축으로 삼아 일본 현대 미술사를 조감해 볼 수 있게 한다"고 했다. 4월 3일까지. 031-481-7000.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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