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매춘과 대한민국 매춘

빈섬의 '역사 읽기 뉴스 읽기'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문득 두 개의 글을 겹쳐 읽었다. 하나는 대학생들이 펴낸 2009년 무크지에 나온 좌담이다. 남대생1 - 얼마 전 티비에서 강남 룸살롱에서 일하는 텐프로에 대해서 나왔는데, 요즘 대학생들이 학비를 벌기 위해서 텐프로로 일하기도 한다는 거야. 방학 동안 텐프로로 일하면 한 학기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 수 있대. 그만큼 여대생들에게 있어서 성매매는 쉽게 큰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고 볼 수 있지. 여성들이 금전적으로 도움이 되니까 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여대생1 - 성매매 관련 서적을 본 적이 있었는데, 한번 성매매 업종에 뛰어든 여성은 다른 일을 하기 힘들어하는 경향이 크대. 하룻밤에 큰 돈을 벌 수 있으니까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 같아. 남대생2 - 맞아. 솔직히 생각해봐. 며칠만 일하면 엄청난 돈이 들어오는데, 한번 성판매를 한 뒤 그것보다 훨씬 임금이 적은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겠어? 그것이 성매매의 진정한 무서움이라 볼 수 있지. 여대생2 - 그런 성매매의 중독성이 여성들로 하여금 악순환에 빠뜨리는 것 같아. 또 우리사회의 자본주의가 성매매를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대생1 - 자본주의가 성매매를 부추긴다는 말이 무슨 뜻이야? 남대생1 - 자본주의 사회는 돈을 최우선으로 여기잖아. 돈이면 뭐든 살 수 있다는 생각이 사회 속에 만연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돈으로 성을 사고파는 성매매까지도 가능해진 거야. 돈을 가진 권력자가 타인의 성을 물건으로 여기고 구입하는 상황에 이른 거지. 여대생2 - 덧붙이자면 다들 알다시피 자본주의 사회 이전에도 성매매와 비슷한 것들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야. 그건 또 그 당시의 신분제 구조가 그러한 배경을 부추겼던 것은 아닐까? 자기보다 권력이 낮은 사람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도록 만든 것이 신분제 구조니까. 남대생2 - 그런데 성매매에 대한 기사를 보니까 이상한 점이 하나 있더라고. 성판매는 유독 여성들에게만 집중되는 것 같지 않아? 요즘엔 호스트바도 많이 생기고 있다고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여성 성판매 비율이 높은 것은 사실이야.

프랑스 영화 '스튜던트 서비스'의 포스터.

다른 하나는 고려 사람 이곡(1298-1351, 목은 이색의 아버지, 호는 가정)이 쓴 ‘시사설(市肆說)’이다. 장사꾼이 모여서 물건을 팔고 사는 곳을 시사(市肆, 시장)라고 한다. 내가 처음 이 도성(개성)에 온 뒤로 맨 먼저 이 시장 골목에 들어와 보았는데, 얼굴을 아름답게 꾸민 여자들이 몸을 파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얼굴이 고운 정도에 따라 몸값이 비싸기도 하고 사기도 하였는데, 공공연히 몸값을 흥정하면서도 조금도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이곳을 이른바 ‘여사(女肆, 여자시장)’라고 하였다. 참 불미스러운 풍속임이 틀림없었다. 대한민국 서울의 매춘에 대해 말하고 있는 대학생들과 1300년대 개성의 매춘을 설명하고 있는 이곡은, 놀랍게도 거의 비슷한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 대학생이 말한 ‘텐프로’는 이곡이 말하는 ‘고운 정도에 따라 몸값이 비싸기도 하고’에 해당되는 말이며, 또 ‘타인의 성을 물건으로 여기고 구입하는 상황’과 ‘공공연히 몸값을 흥정하면서도’ 또한 비슷한 뉘앙스이다. ‘여성들이 금전적으로 도움이 되니까 원하고 있는 것’이나 ‘하룻밤에 큰 돈을 벌 수 있으니까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이란 진단은 ‘흥정하면서도 조금도 부끄러운 기색이 없’다는 이곡의 지적과 맥을 같이 한다. 이곡이 불미스러운 풍속이라고 개탄한 부분을, 대학생들은 ‘무서움’, 혹은 ‘악순환’이란 표현으로 변주한다. 물론 700년의 시간적 간격을 둔 두 글의 시점이나 문제에 대한 견해가 정확하게 일치한다고는 볼 수 없다. 이곡은 매춘에 대해 여자들이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점을 꾸짖고 있으며, 그 풍속을 불미스럽다라고 우려한다. 여기에는 매매춘을 하는 남성에 대한 비판이나 문제의식은 없다. 왜 이런 매춘시장이 생겨나는지에 대한 분석이나 관점도 보이지 않는다. 개성에 와서 목도한 기이한 현상으로 다루고 있을 뿐이다. 이곡은 원나라에서 벼슬을 한 관리로서 고려에 대한 처녀징발을 중단하도록 황제에게 건의해 관철시킨 애국적인 도덕론자이기도 하다. 그런 그였기에 개성의 이런 풍속을 보면서 매우 당혹감을 느꼈을 것이다. 요즘의 대학생들은 성매매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네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노라면, 매춘이 주는 벌이의 유혹 자체가 뿌리치기 어려울 만큼 크다는 점에 동의를 하는 것 같다. 십여년 전만 해도 대학생이 매춘을 하는 일은 중요한 뉴스로 부각되었다. 대학생은 ‘지성인’과 동일시되었고, 사회적인 품격을 지키는 집단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학생이기에 매춘을 하는 일이 더욱 문제된다는 의식은 찾아보기 어려운 것 같다. 대학의 등록금이나 대학생활을 위한 비용을 훨씬 뛰어넘는 매춘의 가격에 일말의 ‘동경’까지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매춘이 함의하는 ‘윤리적 가치의 치명적 상실’은 예전보다 덜 중요해지고 있는 것 같다. 학생들의 매춘이 증가하고 있는 이유가 등록금과 생활비가 치솟는데 있다고 보는 것은 매우 단선적인 분석이다. 학생들이 ‘쉽게 돈을 버는 맛’에 빠지기 때문이라는 점을 지적하는 것도 일리가 있긴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로 보기는 어렵다. 대학생을 비롯한 우리 시대의 사람들의 내면에 가치의 전도(顚倒)가 일어나고 있는 징후로 읽는 것이 설득력이 있을지 모른다. 돈보다 우위에 있는 가치는 없다는 생각이 보편화되고 일상화된다. 정조라는 가치는 결혼 이데올로기와 함께 근대적 가치로 떠밀려가고 있는 상황에서 가치 우위를 지닌 돈이 가치 하락을 겪고 있는 정조와 교환할 매력이 커졌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고려의 매춘시장에 대한 고발로 보건대, 이같은 현상은 현대가 낳은 병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오히려 도덕적인 가치와 시장적인 가치들이 순환하면서 시소를 타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기에 이곡은 무엇인가를 비판하려 하지만, 여자들을 욕하는 방법 밖에 찾지 못했으며, 또 대학생들도 뭔가 대책을 찾아보려 하지만, 하룻밤에 버는 돈이 그렇게 많은데 유혹을 뿌리치기는 참으로 힘들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쪽으로 기울고 만다. 스스로의 내면에 무너지고 있는 가치를 냉철하게 바라보기 어려운 까닭이다. 매춘 시장 자체도 무조건 없애거나 억압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 현실로 받아들이고, 차라리 그 시스템을 양성화시켜 인권이나 복지와 보건에 신경쓰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느냐는 결론을 낸다. 이들의 생각에는, 시대의 불가역적인 흐름을 읽는 본능적인 촉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옳으냐 옳지 않느냐의 문제는 이들의 의미망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는 중이다. 이런 현상은 결국은 결혼시스템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사랑과 순결의 논리들을 치명적으로 뒤흔들 수 밖에 없다. 섹스의 기준보다 돈이 더 귀하다는 생각이 보편화되는 사회에선 결혼도 ‘매춘’의 일부가 될 수 밖에 없는 끔찍한 그림이 그려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돈에 팔려 결혼하고, 돈을 노려 결혼하는 수많은 드라마와, 돈 많고 명 짧은 홀아비 과부에게 시집 장가가겠다는 입버릇과 우스개는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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