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의 작가 메리 셸리 타계 165주기
영화 프랑켄슈타인의 한 장면
큰 몸집에 각진 얼굴, 얼기설기 꿰맨 피부와 목에 박힌 나사, 초점을 잃은 퀭한 눈. '프랑켄슈타인'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미지다. 영화나 드라마, 뮤지컬 등으로 익숙한 프랑켄슈타인의 원작을 쓴 이는 여류 작가 메리 셸리(1797-1851)다. 눈길을 끄는 것은 메리 셸리의 어머니가 '여성의 권리 옹호'를 썼으며 여성 인권을 주장한 최초의 페미니스트로 꼽히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라는 점이다. 이 영향 때문일까. 프랑켄슈타인은 공상과학소설의 고전이지만 페미니즘 소설로도 읽힌다. 1일은 프랑켄슈타인의 작가 메리 셸리가 세상을 떠난 지 165년이 되는 날이다. 울스턴크래프트는 메리 셸리가 어렸을 때 사망했기 때문에 그가 직접적으로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아버지인 윌리엄 고드윈은 남녀가 평등하다는 데 동의하고 울스턴크래프트와 결혼한 자유주의 정치 철학자이자 아나키스트였다.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로 여겨졌고 정치적, 경제적 권리도 없는 시대에 메리 셸리가 당시로서는 급진적인 사상을 가질 수 있었던 바탕에는 이런 아버지의 지원이 있었다.메리 셸리가 낭만주의 시인이자 정치 철학자 퍼시 비시 셸리와 사귀기 시작한 것은 17살 때인 1814년이었다. 하지만 그는 유부남이었고 두 사람이 결혼한 것은 퍼시 비시 셸리가 첫 번째 부인과 사별한 뒤인 1816년이다. 이 해는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구상이 시작된 해이기도 하다.셸리 부부는 절친했던 낭만주의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과 함께 스위스 제네바에서 여름을 보냈는데 장마가 계속됐다고 한다. 밖에 나가지 못해 무료했던 바이런은 괴기 소설을 쓰자는 제안을 했고 여기서 메리 셸리는 한 과학자가 시체를 되살리는 이야기를 썼다. 이 이야기가 발전한 것이 2년 뒤 출간된 프랑켄슈타인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때 같이 머물던 바이런의 주치의 존 윌리엄 폴리도리도 흡혈귀 이야기를 다룬 '뱀파이어'를 썼다는 점이다. 이 소설은 '드라큘라' 등의 원형이 됐다. 이를테면 프랑켄슈타인과 뱀파이어가 한 자리에서 태동한 셈이다. 여하튼 이 같은 배경 속에서 탄생한 프랑켄슈타인에는 페미니즘이 반영돼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소설 속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든 괴물은 여성을 배제하고 있는 사회를 빗대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저명한 영국 학자 허버트 스펜서는 "오직 하나의 부모로서 아버지만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메리 셸리는 여성의 존재를 지우고 후손을 만들어내는 남성들의 가부장적 욕망이 빚어낸 끔찍한 결과를 소설로 그렸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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