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10월 초 세계 최대의 메가 자유무역협정(FTA)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타결되면서 적잖은 논란이 있었다. 그중 가장 핵심이 됐던 것은 우리나라가 참여하지 못한 것이 '전략적 판단 착오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지적이었다. 당시의 국제역학관계나 협상 전략에 대한 정부ㆍ전문가의 설명이 이어지면서 논란이 가라앉았지만, 그 과정에서 한중 FTA 비준이 화두로 떠오르게 됐다. TPP에 가입하지 못한 한국 입장에서 대응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 한중 FTA이기 때문이다. 세계 10대 무역 대국 중 중국과 FTA를 체결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또한 우리나라는 중국과 FTA를 체결하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글로벌 3대 경제권인 미국, 유럽, 중국과 모두 FTA를 체결하게 됐다. 이 두 가지 사실이 주는 의미는 절대로 간단치 않다. 13억5000만명에 달하는 중국 인구는 미국의 4배, 유럽연합(EU)의 2배를 넘는다. 중국에서 연 소득 3만달러 이상의 중산층은 한국 인구의 5배, 3억명이 넘는다. 매일 1억명의 중국인이 전자상거래업체인 알리바바에 접속해 물건을 산다. 세계 최대의 시장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여기에 더해 중국에서 매년 태어나는 신생아 수는 무려 1600만명에 달한다. 이는 한국에서 태어나는 신생아 수 44만명의 약 40배이며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중국과의 FTA는 이처럼 거대한 시장에 우리가 더 깊숙이 진출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중국과의 FTA를 통해 우리나라는 명실상부한 FTA 허브로 부상하게 됐다. 이것은 단순한 수사(修辭)가 아니다. 중국시장 진출을 노리는 미국과 유럽의 선진 기업들은 우리나라를 생산기지이자 테스트 마켓으로 활용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중국산(Made in China)'이라는 이미지를 극복하고 선진시장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중국 기업들은 한국산(Made in Korea) 중국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우리나라에 적극 투자하게 될 것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나라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시장 개방이라는 말만 나오면 주눅이 들고 우리 시장 보호에만 급급한 FTA 후진국이었다. 그러나 시장 규모가 작고 자원도 부족한 우리로서 무역 확대 없이는 성장을 지속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FTA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됐고, 그 결과로 올해 상반기까지 전 세계 52개국과 FTA를 체결했다. 11년 사이에 상전벽해가 일어난 셈이다. 한중 FTA는 우리가 진정한 FTA 중심 국가로 도약했다는 방증이자, 우리나라 FTA 전략의 방점이다. 우리 기업들은 이미 한중 FTA 준비에 뛰어들었다. 대한상의가 올해 개최한 두 번의 '한중 FTA 활용 전략 세미나 및 상담회'에는 무려 1000명의 기업인이 몰렸다. 한중 FTA 관련 행사는 예상보다 조기에 마감되기 일쑤고, 다음번에 참석하시라고 안내를 해도 "세미나 내내 서서라도 듣겠다"고 하소연하는 이들이 수십 명씩이다. 다른 경제단체나 연구소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한중 FTA는 아직 국회의 비준을 받지 못하고 외교통일위원회에 한ㆍ베트남 FTA, 한ㆍ뉴질랜드 FTA와 함께 상정돼 있다. 30개월간 14차례 걸쳐 어렵게 협상을 진행해 타결했고 기업들은 이미 준비에 나서고 있는데 정작 발효가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중 FTA는 발효일에 첫 번째 관세 인하가 발생하고, 다음 관세 인하는 그 다음 해 1월1일에 이뤄지도록 돼 있다. 즉 올해 중에 한중 FTA가 발효되면 관세 절감 효과가 발효일과 내년 1월1일에 연달아 발생하게 되지만 올해 발효가 되지 않으면 그만큼 우리 기업에 손해가 돌아가는 셈이다. 더군다나 현재 한국과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중국, 일본, 인도, 호주, 뉴질랜드 등 16개국이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이 중에는 TPP에 참여한 나라도 7개나 된다. 어렵게 한중 FTA를 체결한 보람이 있으려면 다른 나라가 뛰어들기 전에 우리가 먼저 들어가야 한다. '줄탁동시'라는 말이 있다. 알 속의 병아리가 껍질을 깨뜨리고 나오기 위해 껍질 안에서 쪼는 것을 '줄'이라 하고, 어미 닭이 밖에서 쪼아 깨뜨리는 것을 '탁'이라 한다. 어떠한 일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양쪽이 타이밍을 맞춰 협력해야 한다는 사자성어다. 한중 FTA도 마찬가지다. 국회와 정부의 줄탁동시를 통해 조속한 비준이 이뤄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경제와 기업에게 커다란 기회의 문이 빨리 열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중국은 한국 경제와 기업의 현재이자 미래다.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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