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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얼마 전 만난 전직 상공관료는 산업계 현안과 관련해 대화를 나누다 "최근 산업 전반은 물론 개별기업에서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데 주무부처의 역할이 너무 없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을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상공관료 출신으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외교통상부에서 통상을 가져와 대(大)부처가 된 산업통상자원부지만 산업계의 불만은 오히려 커졌다. 자동차, 철강, 조선, 화학, 섬유 등 산업 전반에 경쟁력이 떨어지는 데다 사업ㆍ인력 구조조정 등 사업재편이 시급한 상황에서 산업진흥부처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자원빈국인 나라에서 저유가가 오히려 자원 확보의 호기라는 평가가 많지만 MB정부의 자원 외교에 대한 전방위 사정(司正)의 여파로 자원 개발도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정부당국이 역점을 두고 있는 좀비기업 대책도 예산과 세제의 칼을 쥔 기획재정부, 금융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금융위원회가 주도하는 모양새다. 주무부처인 산업부는 보이지 않는다. 좀비기업은 외부의 도움(특히 정책금융이나 시중은행의 자금지원)이 끊어지면 곧바로 죽는 기업을 말한다. 정부당국은 좀비기업이 경제와 금융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서둘러 정리하겠다는 것이다. 자율적이고 선제적 구조조정이 안 돼서 최후의, 가장 강력한 수단인 돈줄을 틀어막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좀비기업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는 은행 영업점과 직원에 불이익을 주기로 했다고 한다. 벌써부터 여기저기서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금융권에선 구조조정을 차일피일 미루던 정부당국이 이제 와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푸념한다. 기업들은 좀비기업뿐만 아니라 정상기업, 회생가능한 기업에 대해서도 돈줄이 막히고 중소기업이 가장 큰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고 걱정한다. 대부분 기업들도 좀비기업 정리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관(官)주도가 아닌 민간, 시장주도의 구조조정이 진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른다. 그래야 금융권이 옥석을 가려 죽일 곳은 죽이고 살릴 곳은 살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SK하이닉스다. 부실기업의 대명사였던 하이닉스는 빅딜의 일환으로 현대전자와 LG반도체를 흡수 합병하면서 탄생했지만 2001년 워크아웃에 돌입, 3차례 걸친 채무조정 중 영업이익이 흑자로 돌아서면서 2005년 워크아웃을 졸업했다.1999년 LG반도체와 합병 당시 하이닉스의 부채는 차입금 12조원을 포함해 무려 15조8000억원에 달했으나 채권단의 채무조정과 사업매각 등을 통해 2005년 말 부채는 차입금 1조6000억원을 포함해 4조원으로 줄었다. 2003년부터는 영업익이 흑자로 돌아서 정상화에 성공했다. 매각과 청산의 위기까지 몰렸던 하이닉스는 2012년 SK그룹이 인수해 SK하이닉스로 출범해서는 SK그룹은 물론 한국경제를 이끄는 주력기업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SK하이닉스는 좀비기업의 조속한 정리도 중요하지만 이 과정에서 살아날 수 있는 곳까지 죽일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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