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선수 '지단' 영화 찍은, 콘지의 또다른 드리블

내달 3일 개봉영화 '이민자'의 촬영감독 다리우스 콘지, 특유의 영상 다시 선보여

영화 '이민자'의 다리우스 콘지(오른쪽) 촬영감독과 제임스 그레이 감독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프랑스의 축구스타 지네딘 지단(43)은 '아트사커'의 핵심이었다. 1990년대 들어 유행한 압박전술에도 중원에서 느릿한 플레이 스타일을 고수했다. 압박의 숲속에서 여유롭게 산책을 즐기는 유일무이한 테크닉의 소유자였다.영화 '지단: 21세기의 초상(2006)'에는 이런 지단의 일거수일투족이 담겼다. 현란한 패스나 놀라운 킥이 아닌 경기장에 내던져진 한 인간의 희로애락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 움직임을 따라가는 카메라는 다리우스 콘지(60)가 잡았다. '델리카트슨 사람들(1991년)'을 시작으로 '비포 더 레인(1994년)', '세븐(1995년)',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1995년)', '에비타(1996년)', '에일리언4(1997년)', '패닉룸(2002년)' 등의 촬영을 담당한 거장이다. 콘지는 지단과 닮은 점이 많다. 알제리계인 지단은 프랑스 이민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란 테헤란에서 태어난 콘지는 부모를 따라 프랑스로 건너갔다. 둘은 프랑스보다 다른 나라에서 왕성하게 활동한다. 이탈리아 유벤투스, 스페인 레알마드리드 등에서 뛴 지단은 현재 레알마드리드 카스티야의 감독으로 일한다. 콘지는 영화를 배우기 위해 찾은 미국에서 자신의 영역을 넓힌다. 그 색깔은 한 가지로 규정하기 어렵다. 스탠릭 큐브릭 감독이 그러했듯 영화를 찍으면서도 꾸준하게 실험을 병행한다. 필름 현상에 주는 변화가 대표적이다. 콘지는 '델리카트슨 사람들',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 '세븐' 등에 블리치 바이패스 기법(필름을 현상할 때 표백 단계를 건너뛰어 은 입자를 세탁하지 않고 남겨두는 방법)을 사용했다. 콘트라스트를 높이고 전체적인 채도를 떨어뜨려 영화의 암울한 분위기를 극대화시켰다. 가장 처음 시도한 사람은 '먼 목소리, 조용한 삶(1988)'의 패트릭 듀발이지만 이를 널리 알렸다는 점에서 느와르나 공포물을 맡은 촬영감독에게 효시로 각인돼 있다.

영화 '이민자'의 다리우스 콘지(왼쪽) 촬영감독과 제임스 그레이 감독

콘지의 시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프라하(1992)', '비포 더 레인', '에비타'등에 ENR 현상 기법(필름을 현상할 때 산화은을 첨가하는 방법)을 적용했다. 밝기는 그대로 두면서 콘트라스트를 강조해 화면의 명암 차이를 극대화시켰다. 국내에서는 최영환 감독이 '혈의 누'에서 처음 선보였다. '패닉룸'에서 선보인 극단적 줌 인도 빼놓을 수 없다. 세트 촬영과 컴퓨터그래픽으로 피사체의 세밀한 곳까지 파고들어 패닉룸을 지탱하는 철판의 차가움과 투박함을 강조했다. 이 기법은 10여년이 흘러 마블코믹스의 '어벤져스' 시리즈 등을 대표하는 기법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의 트랜드 선도는 근래 한풀 꺾였다. 그 이상을 보여줄 수 있는 디지털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특유의 분위기 조성, 세련된 감성이 퇴색하지는 않았다. 내달 3일 개봉하는 '이민자'에 1920년대의 뉴욕을 옮겨놓았다. 그 덧칠은 빈민가에 혼자 남겨진 에바(마리옹 꼬띠아르)의 감성과 절묘하게 맞닿는다. 오페라풍의 특색을 살려 시각적 아름다움을 전하지만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끝까지 유지해 '아메리칸드림'에 대한 허상을 보여준다. 콘지는 이를 표현하기 위해 제임스 그레이(46) 감독과 함께 1년여 동안 전시회와 미술관을 다녔다. 색조와 프레임에 대한 연구도 거듭해 전체적인 분위기를 오토크롬(필름 개발 전까지 사용된 천연색 사진술)으로 이끌었다. 그레이 감독은 "빛이 어디에서 들어오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단 세트의 어느 부분을 밝힐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분명히 해야 했다"며 "콘지의 노력 덕에 신화와 같은 영화가 만들어졌다"고 했다.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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