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이 16일(현지시간) 독일의 한 라디오 방송에서 "860억유로 규모의 구제금융보다 그리스의 자발적인 유로존 이탈이 더 좋은 방법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주말 유로존 정상회의에서 그리스 사태 해법으로 구제금융이 결정됐고 독일이 공식적으로 구제금융에 지지 의사를 밝혔지만 쇼이블레는 여전히 그렉시트 해법에 미련을 못 버린 것일 수 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FT)는 분석했다. 정상회의에서는 독일 재무부가 5년간의 한시적 그렉시트를 검토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FT는 여전히 그리스 사태 최상의 해법이 무엇인지 확신하지 못 하고 있다는 점에서 쇼이블레의 입장이 그리스 정부의 입장과도 비슷하다고 덧붙였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는 전날 구제금융 개혁안 지지를 호소하면서도 솔직히 (구제금융 해법에) 확신을 갖지는 못 하겠다고 인정했다. 유클리드 차칼로토스 그리스 재무장관도 "우리가 옳은 것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면서도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쇼이블레 장관은 하지만 의회에 그리스 구제금융 법안을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의회는 17일 그리스 구제금융 법안을 토론하고 표결에 붙일 예정이다. 독일 의회는 그리스 구제금융 법안을 승인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집권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내에서 약 60명의 의원들이 반대표를 던질 것으로 예상된다. 쇼이블레가 여전히 그렉시트를 하나의 선택지로 생각하고 있다면 향후 그리스 구제금융 협상 과정에서도 변수가 늘 수 있다. 17일 독일 의회의 표결은 그리스 구제금융 논의 시작을 허용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스 사태 해법에 대해서는 향후 수주간 논의후 다시 의회 표결을 거쳐야 하며 논의 과정에서 다시 그렉시트 이슈가 부각될 수도 있는 셈이다. 여기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쇼이블레에 얼마나 많은 협상 여지를 부여할 지가 변수라고 FT는 설명했다. 메르켈은 원래 그렉시트는 절대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그는 주말 유로존 정상회의에서 그렉시트를 막기 위해 무조건 합의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득실을 따지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렉시트 불가 입장에서 태도가 바뀐 것이다. 이와 관련 FT는 지난달 26일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갑작스레 국민투표를 선언한 후 메르켈의 태도가 바뀌었다고 분석했다. 당시 치프라스의 태도가 메르켈을 상당히 화나게 만들었고 메르켈의 태도가 나가려면 나가라는 식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독일은 차라리 그리스가 유로존을 떠나면 독일이 좀더 유연하게 그리스를 도울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일례로 채무 탕감은 EU 조약상 불가능한데 그리스가 유로존을 떠나면 채무 탕감에서도 독일이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는 것이다. 쇼이블레 장관은 라디오 방송에서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채무 탕감을 요구하고 있는 것에 대해 "유로존 회원국에 대한 채무 탕감은 용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IMF는 만기 연장 등 그리스 채무 재조정도 괜찮지만 원칙적으로는 채무 탕감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IMF는 그리스 채무 부담을 상당히 경감해주지 않는다면 3차 구제금융에는 참여하지 않을 수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독일 내에서는 그렉시트가 여전히 논란거리다. 기독민주당의 에크하르트 레베르그 대변인은 "한시적 그렉시트에 대한 논의는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독민주당의 연정 파트너인 사민당은 쇼이블레 장관이 그렉시트에 대해 언급하는 것에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지그마르 가브리엘 사민당 대표는 그리스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정상회의에서 그렉시트를 거론되는 것에 동의했다. 하지만 이미 구제금융 해법으로 결정됐다면 그렉시트는 이제 논외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쇼이블레가 그렉시트 이슈를 계속 꺼내는 것이 가브리엘 대표를 곤란케 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가브리엘 대표는 전략적 수단으로 그렉시트에 동의한 것인데 쇼이블레가 계속 그렉시트를 언급하면 연정 파트너인 사민당도 그렉시트를 지지했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EU 통합을 강조하는 사민당의 입장에서 그렉시트는 사민당의 원칙과 어긋하는 사안이다. 한편 그리스는 오는 20일부터 은행 영업을 재개키로 결정했다. 이날 유럽중앙은행(ECB)이 그리스 은행들에 대한 긴급유동성지원(ELA) 한도를 상향조정해줬기 때문이다. ECB는 그리스 의회가 구제금융 개혁법안을 통과시키자마자 ELA 한도를 890억유로에서 899억유로로 증액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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