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우진기자
솔개. 사진=미시건대학 동물 박물관
솔개의 변신은 마치 실제 생태인 것처럼 거론된다. 그 사례를 몇 가지 살펴보자. “솔개는 오래 사는 조류다. 최장 70년 이상까지도 산다. 이런 솔개는 부화한 지 40년이 되면 중요한 선택을 한다. 현재의 익숙하고 편안한 삶을 유지할지 아니면 고통스럽지만 부리와 발톱을 깰 것인지를 놓고 결정해야 한다.솔개는 마흔살이 되면 발톱이 노화해 사냥감을 효과적으로 잡아챌 수 없고 부리와 깃털도 길게 자라 하늘로 날아오르기 힘들어진다.현재의 익숙한 삶을 선택할 경우 당장은 편할지 모르지만 머지않아 사냥을 할 수 없게 된다. 반면에 고통스러운 수행과정을 거치며 새로운 부리와 발톱을 얻고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해 30년의 수명을 더 누리게 된다.광주광산업이 지금 솔개와 같은 선택의 시점에 와 있다.” (윤장현 광주시장 2014 국제광산업전시회 특별기고, 전자신문 2014.10.05)“수명이 20년인 솔개는 20년이 돼서 마지막에 높은 절벽 위에 올라가 혼자 외롭게 제일 먼저 자신의 깃털을 다 뽑아내고, 맨 마지막에 부리로 발톱을 뽑아내고 그리고 남은 부리를 제 몸으로 부딪혀 뽑아내야 20년 수명을 더 산다고 한다.” (2013년 1월 문희상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의원총회 모두발언에서 당의 진정한 반성과 변화 의지를 호소하며)시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솔개의 혁신’은 2005년부터 거론됐다. 그해 11월 정상명 검찰총장은 취임사에서 “솔개는 40년을 살고 몸이 무거워지면 돌에 부리를 쪼아 새 부리가 나게 하고, 그 부리로 발톱과 깃털을 뽑아내어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한 뒤, 창공을 차고 올라가 30년을 더 산다”며 검찰 간부들에게 변화와 혁신의 주체가 될 것을 당부했다. 황영기 우리은행장은 2006년 4월 월례조회에서 생존을 위한 솔개의 몸부림을 소개하면서 우리은행도 이를 본받아 환골탈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선 궁금한 점은 솔개가 과연 70년을 장수하는가 하는지다. 미국 미시건대학 동물학 박물관에서 운영하는 동물다양성 사이트(animaldiversity.org)에 따르면 솔개(black kite)는 기대수명이 22년이다. 야생 상태에서는 24년까지 산 기록이 있다. 플래닛패션(planetpassion.eu)이라는 사이트도 솔개 항목에서 수명이 최장 25년이라고 전한다.솔개. 사진=미시건대학 동물 박물관
따라서 위 이야기에서 ‘솔개가 40년을 산 뒤 환골탈태를 하면 30년을 더 활기차게 산다’는 부분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대목은 문희상 전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솔개의 변신 시기를 태어난 지 20년으로 전했다는 점이다. 솔개가 목숨을 건 변신을 시도하는 시기가 40세에서 20세로 앞당겨진 것이다. 아마 솔개의 평균수명이 25년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이 ‘40세’를 ‘20세’로 낮춘 버전을 만든 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솔개가 20여년을 사는 동안 한차례 부리나 발톱, 깃털을 갈아치울 수는 있을까? 이에 대해 동물생태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새에서 부리가 다시 만들어져 나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새가 부리를 부분적으로 다쳤을 때 이따금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 보완하는 게 나타날 수는 있으나, 생태학적으로 부리가 다시 날 가능성은 없다.” (구태회 경희대 환경ㆍ응용화학대학장, 한겨레신문,2006.05.09)“새의 부리가 손상되면 다시 나지 않는다. 또 새들이 부리를 다치면 음식물 섭취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살 수가 없다. 조류는 포유류랑 달라서 음식물을 섭취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기간이 매우 짧다.” (권순건 에버랜드 수의사, 한겨레신문,2006.05.09)부리가 다시 나지 않으면 새 부리로 발톱을 뽑지도 깃털을 뽑지도 못한다. 변신하지 못하고 죽는 수밖에 없다. 그럼 솔개 우화는 누가 지어낸 것일까. 한겨레신문은 ‘‘솔개식 개혁’의 실체…솔개는 정말 환골탈태를 할까?’ 기사에서 이 이야기가 2005년 4월 나온 책 ‘우화경영’ 내용에서 유래됐다고 전했다. 저자 정광호는 제목에 ‘우화’임을 명시했다. 이 우화를 전하는 사람들이 그럴듯하게 말하면서 실제처럼 알려지게 된 듯하다. 백우진 기자 cobalt100@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