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재 논설위원
새가 죽을 때 울음이 슬프듯 사람은 죽을 때 마음이 선해진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각성을 하며 새로운 각오를 갖는다. 그래서 많은 뛰어난 이들은 스스로 죽음을 경험했다. 신체의 죽음이 아니라 살아 있으면서 죽고자 했다. 자기를 죽여 새생명을 얻고 새 인간이 됐다. 석가의 6년 고행은 자신의 죽음을 통한 재탄생이었으며, 예수의 광야에서의 40일은 부활 이전의 부활이었다. 죽어야 새로 사는 것, 지금 우리의 어느 정치인에게 특히 필요한 게 바로 그것이다. 정파적 호오를 떠나서 한국의 한 유력 정당, 그의 성장이 곧 한국정치와 한국사회의 발전에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인물, 즉 문재인씨에게 결여된 것, 그래서 지금 위기에 처해 있는 그에게 필요한 것, 그것은 자신을 스스로 죽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살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게 광야에 가라고, 출가해 고행을 하라는 게 아니다. 다만 죽음과도 같은 절박함과 처절함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는 매우 안정된 품성, 단단한 인격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친구 노무현을 잃은 참척(慘慽)과도 같은 충격에도 담담히 사망사실을 알릴 때 보여준 그 냉철함은 놀라운 절제이며 강인함이었다. 그러나 그 절제와 담담함은 그를 묶는 결박이기도 하다는 것을 우리는 거듭 봐 왔다. 아마 좋은 시절이라면 그는 지금의 그 품성과 자질로도 유능한 정치인이 됐을 것이다. 아니 그럴 것도 없이 한 사람의 성실한 직업인으로 자기 삶을 충실히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자신을 지금 우리의 정치에, 역사에 참여시키기로 했을 때 그에겐 억누를 수 없는 울분과 비통, 내면의 아우성이 필요했다. 그것은 저항하는 이들, 약자들의 편에 서는 정치세력을 이끄는 이라면 더욱 필요한 것이었다. 냉철함과 총체적 안목은 그 격정과 단심(丹心)에서 비롯되는 것이어야 했다. 신화학자 캠벨은 영웅신화들을 분석하면서 영웅은, 아니 어떤 이든 성장을 한다는 건 고향을 떠나 많은 방황을 거쳐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때 이뤄지는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은 과연 출향(出鄕)을 했는가. 옥살이도 했으니 출향과 수난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좀 더 필사의 출향을, 좀 더 온 몸을 내던지는 현실에의 투신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그는 정(正)에서 반(反)으로 다시 지양의 합(合)으로 높이 올라 돌아오는 변증법적 발전을 하게 될 듯하다. 그럴 때 그는 진짜 지도자가 될 것이며, 노무현의 참모가 아닌 진짜 '동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명재 논설위원 prome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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