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현기자
타고르
[아시아경제 김철현 기자] 7일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최초의 동양인이자 인도의 시성으로 불리는 라빈드라나트 타고르가 태어난 날이다. 1861년 5월 7일 태어난 타고르는 우리에게는 조선을 노래한 '동방의 등불'이라는 시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동방의 등불'은 4행의 짧은 시로 소개하는 곳이 있는가하면 15행의 긴 시로 쓰는 곳도 있다. 정제된 언어로 이뤄진 시에서 무려 11행이나 차이가 생긴 까닭은 무엇일까. 1929년 일본을 방문 중이던 타고르는 조선 방문 요청을 받았지만 일정 때문에 이에 응하지 못하면서 짧은 시를 써서 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929년 4월2일 동아일보 2면에 이 시가 처음 실렸는데 현재의 맞춤법으로 옮기면 '일찍이 아세아의 황금시기에/빛나던 등촉의 하나인 코리아/그 등불 한 번 다시 켜지는 날에/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라는 4행의 시다.당시 타고르는 제목이 따로 없는 6행의 시를 영어로 써서 줬는데 번역과 신문 게재를 거치면서 4행의 시로 정리됐다고 한다. 또 당시 신문에 실린 제목은 '조선에 부탁'이라고 돼 있는데 이는 번역자인 주요한이 쓴 것으로 보이고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동방의 등불'이라는 제목은 기사의 제목인 '빛나는 아세아 등촉 켜지는 날 동방의 빛'과 시에 포함된 어휘 등을 바탕으로 훗날 붙여졌을 것으로 추정된다.일부 교과서 등에 실린 타고르의 '동방의 등불'을 보면 4행의 짧은 시가 아니라 무려 15행의 시로 불어난 경우가 있다.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이후 '마음에 두려움이 없고'부터 '내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로 끝나는 11행의 시가 덧붙여진 것이다.실제로 앞의 4행과 뒤의 11행이 매끄럽게 연결되기 때문에 크게 의심을 하지 않고 이 15행의 시를 '동방의 등불'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은데 사실 이것은 타고르가 우리나라에 보낸 4행의 '동방의 등불'에 그의 시집 '기탄잘리'에 35번째로 실린 시를 붙인 것이라고 한다. 기탄잘리 35번째 시의 마지막 행에는 '코리아'가 언급돼 있지 않고 '주여 나의 조국이 깨어나게 하소서'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 여기에 '코리아'를 넣고 이 시를 통째로 '동방의 등불'에 붙인 것은 수용과정에서의 오류라는 지적이다. 여하튼 타고르는 영국의 식민지 지배를 받던 조국 인도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던 우리나라에 깊은 동질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방의 등불' 외에도 그는 1916년 '패자의 노래'라는 시를 보내기도 했다. 이 시는 '청춘'을 발간하던 최남선의 의뢰로 일본 유학생 진학문이 타고르에게 요청해 받은 것이라고 한다. 이 시는 따로 쓴 것은 아니고 그해 발간된 타고르의 시집에 수록된 것을 전한 것이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