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辭意'…칼자루 쥔 檢, 출구 고민 왜?

현직 총리 소환 부담 덜어, 수사 급물살 가능성…수사 확대 '대선자금' 문제로 번질까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버티던 이완구 국무총리가 끝내 사의를 표명했다. 검찰의 ‘성완종 리스트’ 수사가 급물살을 탈 여건이 마련된 셈이다. 헌정 초유의 현직 국무총리 소환에 대한 부담은 덜었다. 하지만 ‘성완종 리스트’ 수사는 결국 2012년 대통령선거 자금 의혹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검찰도 수사확대에 부담은 있다. 우선 이완구 총리가 전격 사의를 표명한 배경이 관전 포인트다. 이 총리는 승부사적 기질이 있는 정치인 출신 총리다. 학계나 관료 출신의 ‘관리형 총리’와는 거리가 있다. 실제로 이 총리는 2017년 대선에서 여권의 유력한 대선후보군 중 한 명이다. 역대 대선에서 충청권 표심에 따라 당락이 엇갈린 것을 고려할 때 ‘충청 맹주’를 자처하는 이 총리 입장에서 불명예 퇴진은 쓰린 선택이다. 그는 2009년 12월3일 이미 한 차례 ‘사의’를 표명한 일이 있다. 하지만 이번과는 정반대의 상황이었고, 정치적 효과 역시 그랬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그는 충남도지사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세종시를 지키겠다는 정치적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행정도시가 무산될 때 신뢰는 깨질 것이며 국민의 좌절과 상처, 갈등과 혼란은 앞으로 국정운영의 커다란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의 기자회견 제목은 ‘국민께 드리는 글’이었다. 충남도민에게 전한 얘기가 아니라 국민을 상대로 전한 메시지였다. 그는 2010년 지방선거에서 출마할 경우 무난히 당선될 것이란 전망이 나올 정도로 충남에서 지지기반이 탄탄했다. 하지만 그는 도지사직을 던졌다. 그의 퇴장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의 의미였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그는 국무총리 자리에 올랐다. 경쟁력 있는 대선후보군으로 입지를 다지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성완종 리스트’라는 유탄에 깊은 내상을 입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2013년 4월4일 이완구 당시 국회의원 재선거 후보의 충남 부여 사무소에서 ‘비타 500’ 박스에 3000만원의 현금을 전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총리는 3000만원 논란 때문에 총리직은 물론 오랜 시간 준비했던 대권의 꿈도 날아갈 위기에 놓였다. 이 총리는 “돈 받은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내놓겠다”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써가면서 배수진을 쳤지만, 오히려 역효과만 내고 말았다.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왼쪽)과 이완구 총리

여론은 이미 ‘유죄’로 판단했고, 여권에서도 ‘이완구 사퇴 불가피’ 흐름이 형성됐다. 이제 칼 자루는 검찰이 쥐게 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검찰은 정치개혁 차원에서 확실히 수사해 모든 것을 명백히 밝혀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는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커졌다. ‘성완종 리스트’ 문제 때문에 관심 밖으로 놓여 있던 자원외교 수사 역시 속도감 있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완구 총리를 ‘전직 총리’ 신분으로 소환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홍준표 경남도지사를 둘러싼 의혹 사건 역시 발 빠른 수사전개 가능성이 엿보인다. 하지만 검찰이 아무런 제한 없는 수사를 하게 될 것인지는 지켜볼 일이다. 이 총리의 사의 표명은 결국 청와대와의 교감에 따른 선택일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도 “매우 안타깝고 총리의 고뇌를 느낀다”고 말했다. 이 총리 사의표명이 동정론으로 이어질 경우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서 “정치권에서 오가는 불법 정치자금 전반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8명은 친박근혜계가 주축으로 모두 여권 인사들이다. 황 장관의 언급은 여권은 물론 야권의 불법 정치자금 수사 역시 예외가 되지는 않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가 담겨 있다.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전방위 수사 확대로 이어질 것으로 보이지만, 복잡한 ‘정치셈법’을 고려할 때 그렇게 되지는 않을 가능성이 더 큰 상황이다. 야권을 향한 경고메시지는 서로 다치지 않는 적정한 선에서 타협점을 찾자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문제는 여론의 흐름이다. 이 총리가 3000만원의 현금을 받았다는 의혹 때문에 총리 자리에서 물러났는데 수억원의 돈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는 이들은 수사의 칼날을 벗어난다면 여론이 동요할 가능성이 크다. 검찰 역시 이러한 여론의 동향을 예의주시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 특별수사팀은 수사팀 구성 초기 “레토릭으로 말하지 않겠다. 검사로서 부끄럽지 않게 원칙대로 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제 검찰의 다짐을 검증받아야 할 시기가 다가왔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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