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로 시련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완구 국무총리와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언젠가 만난다면 아마 "세상엔 비밀이 없다"며 서로를 위로할 것이다. 물론, 불거진 의혹이 향후 검찰조사에서 사실로 밝혀졌을 때는 가정한 것이지만 의혹이 의혹의 꼬리를 물고 있으니 동병상련의 심정이야 어련할까 싶다.홍 지사는 지난 2월 이 총리의 국회 인사청문회를 챙겨본 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세상에 비밀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기면서 공직에 있는 동안만이라도…"라는 글을 적기도 했는데, 본인에게 이 말이 부메랑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이 총리 역시 '양파총리'라는 비아냥을 들으며 '비밀이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게 분명하다.이 총리나 홍 지사가 '성완종 리스트'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정치판에서 십 수 년 이상 활동한 베테랑 정치인이자 역설적으로 청렴한 이미지 때문이다. 누구보다 정의를 강조해 권력의 심장부에 다가갔지만 결국 스스로를 청렴에서 지키지 못해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됐다.이들은 성 전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았던 아니던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생리를 너무 잘 알고 있다. 그 덕분에 지금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다. 성 전 회장이 돈을 준 이유는 분명하다. 경남기업의 회생과 본인의 정치적 야망 등을 위해 대가를 바란 것이지 선의에 의한 것이 아니다. 아직 사실여부가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만약 단돈 1만원이라도 받은 인사가 있다면 그는 1만원 만큼의 호의를 성 전 회장에게 되돌려줬거나 아니면 지금까지도 찜찜한 마음을 품고 있을 수 밖에 없다.지사직을 내던지는 승부수로 정치권에서 주가를 올린 이완구 총리로서는 앞뒤를 구분하지 못했을 리 없다. 홍 지사도 1996년 국회에 입성한 이후 야당시절 '대여 공격수'로 명성을 얻으면서 원내대표, 최고위원, 당대표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이들은 전화 한 통에서라도 공짜와 비밀이 통할 줄 알았다는 착각을 하고 말았을 수 있다. 뿌린대로 거두지 못하면 반발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성 전 회장은 자수성가한 기업인으로 정치권에서는 유명하다. 모두가 그런 부류는 아니지만 스스로 사업을 일으킨 기업인은 사업을 키우기 위해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돈만 챙기고 정작 어려울 때 안면을 바꾸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크다.성 전 회장은 '잘 봐달라'는 의미로 정치인에게 자금을 전달했지만 오히려 사정 대상 1호가 됐고 영장실질심사까지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성 전 회장으로서는 극단적인 선택과 함께 최고 실세인 정치인들을 물고 들어가는 물귀신 작전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는 현직 총리 검찰수사 초읽기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앞으로 관심은 이 사태가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에 쏠려 있다. 여기에 정답은 없다. 최선이 아니라 항상 차악을 고른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사상 초유의 상황이라는 점에서 예측불허일 뿐이다. 다만, 일부 정치인은 차명으로 후원금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세상에 '공짜'와 '비밀', '정답'이 없다는 교훈이 확실히 빛을 발한 셈이다.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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