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축복
한국인 정과 사랑 표현해 온, 김정수 작가 초대전전위 예술 꿈꾸다 백남준 만난 뒤 평면회화 도전고봉밥처럼 쌓인 진달래에 어머니의 바보 같은 자식사랑 담아[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전쟁으로 황폐해지고 먹을 것도 없는 절망적인 순간 이 땅의 어머니들은 뒷동산으로 나물을 캐러 가셨습니다. 봄날 동산에 지천으로 깔렸던 진달래꽃을 보며 얼마나 마음이 설렜을까요. 진달래는 먹을 수도 있었고, 술을 담가 마시면 천식도 나았다고 합니다. 그런 진달래꽃을 바구니에 넣고, 하늘에 뿌리며, 우리 자식 잘 되게 축복했을 모습이 그려집니다."대나무 소쿠리에 수북이 담긴 연분홍빛 꽃잎들. 새 봄을 맞아 '진달래 그림'으로 잘 알려진 김정수 작가(59)가 초대 개인전을 연다. 20년 넘게 작가가 천착해 온 진달래 그림은 이미 국내외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한인 교포들이 그림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가 하면, 미국 유명 영화배우가 그림을 사기도 했다. 지난 2012년에는 홍콩 미술 잡지 '아트 맵' 9월호의 표지로 실리며, 그해부터 작년까지 홍콩아트페어에 출품한 작품이 거의 매진된 바 있다. 중국에선 김 작가의 작품 10 여점이 무단 사용돼 해당 신문사가 사과문을 내고 손해 배상금을 보냈던 적도 있다. 진달래 그림이 인기를 끈 데에는 한국적 감성을 잘 담아내고 있는 소재적 특성 뿐 아니라, 햇빛에 반짝이는 반투명의 진달래색을 재현해 낸 작가의 처절한 노력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작가는 "물감이 변성작용으로 인해 보라색으로 변하면 철쭉이 되고, 흰빛이 많아지게 되면 벚꽃이 되기 일쑤였다. 따뜻하고 맑은 진달래색을 찾기 위해 정말 많은 물감을 사용해 일 년 이상 실험을 거쳤다"고 했다. 더구나 작가가 진달래꽃 색깔을 찾아낼 당시는 임파선암 판정을 받고 병약해졌던 때였다. 그는 "어머니도 같은 암으로 돌아가셨다. 그땐 '정말 죽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수술도 받지 않고, 약도 없이 자연에서 지냈다. 색을 찾다가 절망하던 순간 우연히 돌 너와에 그림을 그리다 드디어 원하던 색을 찾게 됐다"고 소회했다. 그렇게 진달래가 그의 병마저 치유해 줬던 것일까. 그때부터 그는 지금까지 술 담배를 끊고, 식단을 관리하며 진달래를 그리며 살아가고 있다.
김정수 작가.
김 작가는 왜 그렇게도 끈질기게 '진달래'에 매달린 것일까. 사실 그는 1983년 프랑스로 건너가 작업을 하기 전 국내에서 입체 작품을 위주로 발표하며 전위 예술가를 꿈꿨던 이다. 그는 엄혹했던 군부독재 시절 깨진 소주병 잔해들을 붙이거나, 흑백 바탕에 빨간 신호등이 켜진 거리의 군중들을 그려 암울한 시대상을 표현했다. 그런데 예술가로서 자유롭게 작업을 하기 위해 도불한 이후엔 생각이 달라졌다. 파리에서 고(故) 백남준 화백을 우연한 계기로 만나면서부터였다. 백 화백은 당시 척박했던 컴퓨터 예술보단 평면작업을 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조언을 해줬다고 한다. 일본이나 중국 작가들의 회화작품이 유럽에서 선전하고 있을 때였다. 그렇게 해 김 작가는 유화 평면 작업을 하면서 유명 화랑과 전속계약을 맺을 정도로 인정을 받게 됐으며, 프랑스 영주권까지 취득하게 됐다. 10년 가까이 파리에서 잘 나가던 화가로 지내고 있었던 시절, 1990년대 초 한국에서의 초대전을 위해 잠시 귀국하게 되는데 이때 화가로서 두 번째 전환기를 맞게 된다. 그는 "길거리에서 우연히 가수 김수희의 '애모'가 흘러나왔다. 순간 너무 놀랐다. 노래에 빠져드는 듯 했다. 나는 '아직도 뼛속 깊이 한국 사람이구나' 하고 느꼈다"고 했다. 그때부터 작가는 '한국의 화가로, 한국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업을 하자'고 결심했다. 쉽게 이해하기 힘든 개념적인 추상화보다는 '딱 보면, 알 수 있는' 직접적인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우선 고전을 비롯해 시나 소설 등 한국 문학작품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한국인의 정과 사랑을 가장 잘 발현하는 소재를 그림에 넣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달래'를 찾았다. 작가는 "김소월, 신동엽 시인 등 감수성이 강한 우리 문인들이 즐겨 노래했던 꽃이 바로 '진달래'였다는 걸 알게 됐다"며 "한국인의 정서를 담아내기 위해 오랜 시간 고민한 끝에 꽃잎을 따서 바구니에 담고, 징검다리 위에 놓아보기도 하고 하늘에 뿌려보며 그림을 그렸다"고 말했다.그는 진달래 속에서 '어머니'를 발견하고, 그 사랑을 진달래로 표현하려고 했다. 바구니에 고봉밥처럼 쌓인 진달래가 바로 그것이다. 작가는 "풍족하지 않던 시절, 당신은 굶으면서도 자식에겐 고봉밥을 담아주시던 어머니의 사랑"이라며 "어머니의 바보 같은 자식 사랑이 지금의 우리나라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진달래 작품은 어머니의 헌신을 기려 '이 땅의 어머님들을 위하여'란 부제를 붙인 시리즈 작품에 이어 과거와 현대가 뒤섞인 도시의 풍경 속에 진달래 꽃잎들이 떨어지는 '기억의 저편' 시리즈, 바구니 속 소복한 진달래 꽃잎이 대표되는 '축복' 시리즈로 펼쳐지고 있다. 이번 전시에선 100호 이상 대작 10여 점을 포함해 비교적 큰 작품들로만 50여 점이 출품된다. 전시는 다음달 1일부터 14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 02-734-0458.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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