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여담]기막힌 보험의 종말

어느 보험회사가 기막힌 상품을 출시했다. 대상은 기업, 내용은 리스크(위기ㆍ위험). 기업에 뜻하지 않은 리스크가 발생하면 손실을 보전해주는 상품이다. '땅콩 리턴' 사태에 화들짝 놀란 기업들이 앞다퉈 가입한다. 우리도 언제 저런 처지에 놓일지 모른다면서. 덕분에 보험회사는 이익이 급증한다. 기막힌 상품을 기획한 보험회사 직원은 기막힌 보너스에 승진 기회까지 얻는다.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면 해피엔딩이다. 반전이 기다린다. 보험에 가입한 기업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각종 리스크로 몸살을 앓는다. 보험회사가 지불해야 하는 보험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급기야 파산 위기를 맞는다. 기막힌 상품을 기획했던 직원은 보험 역사상 최악의 상품을 내놨다는 불명예를 안고 쓸쓸히 은퇴한다. 픽션이지만 현실을 매섭게 조명한다. 우리 사회가 예측할 수 없는 리스크에 촘촘히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이다. 리스크에 대항한 인류의 오랜 발명품인 보험마저도 그 리스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역설은 위대한 진리 한 토막을 남긴다. '리스크는 우리 삶의 일부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베크 교수는 이런 사회를 '리스크 사회(Risk Society)'로 칭했다. 리스크를 회피하지 말고 마주 서는 것이야말로 리스크 해법의 시작이라는 가르침이다. 환율 전쟁이니 지정학적 위기니 글로벌 경기 침체니 하는 거창한 주제에만 리스크가 붙는 것은 아니다. 개인들도 크고 작은 리스크에 울고 웃는다. 주머니 사정이 열악해지는 가계 리스크, 사람과 사람의 관계 리스크, 결과가 불확실한 선택의 리스크…. 며칠 전 저녁 자리에서 만난 A는 관계 리스크에 움찔한 사례다. A는 딸의 결혼을 앞두고 혼수 문제로 사돈 집안과 작은 오해가 생기더니 급기야 자식들끼리 결혼을 하네 마네 다투는 상황까지 벌어졌다고 토로했다. 다행히 오해를 풀고 화해했지만 그때 그 리스크를 회피 또는 방기했다면 파국은 피할 수 없었을 것이고 이 자리에 앉아 있지도 못했을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더니 술 한 잔을 툭 털어 넣고는 농담을 건넸다. "어때? 파경 보험을 만들어 팔면 대박날 것 같지 않아?" A는 보험회사 직원인 것이다. 하이리스크(고위험), 하이리턴(고수익)은 경제학적인 시각이다. 우리 삶은 로우리스크(저위험), 하이리턴을 원한다. 여기서 발생하는 간극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리스크를 피하지 말고 마주 서라.' 석학들의 가르침이 정답이다. 피할 수 없다면 마땅히 즐겨야 한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이정일 금융부장 jaylee@asiae.co.kr<후소(後笑)><ⓒ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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