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트 컴버배치, 키이라 나이틀리 주연...17일 개봉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 중에서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앨런 튜링(1912~1954)의 인생은 그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풀어야했던 암호만큼이나 수수께끼같다. 천재수학자, 암호해독가, 세계 최초 컴퓨터를 고안해낸 발명가, 인공지능의 창시자 등 화려한 업적 이면에는 거세당한 동성애자, 반쯤 베어 물은 독사과의 주인공이라는 비극적인 운명이 자리잡고 있다. 여기다 유난히 내성적이고 비사교적인 성격은 자신을 내세우거나 적극적으로 변호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튜링이 인류에 끼친 혁혁한 공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은 앨런 튜링의 수많은 업적 중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암호문 '에니그마'를 풀어내 전쟁을 승리로 이끈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 당시 독일군은 문장을 이해할 수 없는 글자 배열로 바꾸어 무한대에 가까운 암호 조합인 '에니그마'를 만들어냈는데, 이 모든 설정을 확인하려면 거의 2000만년이 걸린다고 한다. 24시간마다 1590억의 10억배의 경우의 수가 생성되는 '에니그마'는 사실상 해독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다. 영국 정부는 런던 버킹엄셔 지역에 위치한 블레츨리 파크에 일급기밀 암호해독 기관을 설립하고, 이 '에니그마' 해독에 나설 각 분야의 수재들을 모집했다. 앨런 튜링은 그 멤버들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농담을 알아듣지 못하고, 사교성 제로인 그는 팀에서도 오해와 미움을 받기 일쑤다. 유일하게 그를 이해하는 인물이 바로 암호 해독팀의 여성 멤버인 '조안 클라크'이다. 결국 여러 차례의 좌절과 실패 끝에 튜링은 암호를 해독하는 기계를 만들어 '에니그마' 해독에 성공하는데, 이 기계가 후에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로 발전한 '튜링 머신'이다. 만약 '튜링 머신'이 없었더라면 당시 유럽이 나치의 손에 넘어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같은 공을 세우고도 그의 업적은 '국가 안보'라는 이유로 30년 동안 비밀에 부쳐졌다. 게다가 영국 정부는 그의 성적 취향을 문제 삼아 약물투입 등 화학적 거세를 강제했다. 영화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튜링은 이를 견디지 못하고 2년 뒤 청산가리를 묻힌 사과를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앨런 튜링의 천재적이면서도 괴짜적인 양면을 실감나게 연기한다. 본인이 직접 각본을 보고 캐스팅을 요청했을 정도로 적극적으로 나선 작품이라고 한다. 진취적이면서도 따뜻한 성품을 가진 여성 수학자 '조안 클라크' 역은 키이라 나이틀리가 맡았다. 영화는 앨런 튜링의 남다른 감수성을 지닌 어린 시절부터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활약, 그리고 비참한 말로까지 촘촘하게 엮어낸다. 인류를 구한 천재 수학자에게 국가나 사회가 어떤 식으로 폭력을 행사했는지 영화는 천천히 곱씹는다.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등 8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있다. 17일 개봉.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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