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생 한꺼번에 장애인시설 등 방문 어려워…쓰레기 줍는 둥 마는 둥 학교 주변 한바퀴 돌면 '4시간'
[아시아경제 이윤주 기자] # A대를 지망하는 고2 문과생입니다. 수시 일반전형을 목표로 정시도 함께 준비하고 있는데요, 봉사활동이 고민입니다. 평일에는 시간이 전혀 없고 주말까지 학원 수업이 있는데 봉사활동을 언제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봉사활동이 입시에서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나요? # 헌혈 1회에 봉사활동 4시간 줍니다. 혈장이나 혈소판과 같은 성분헌혈이 아니라 전혈을 하면 10분이면 끝납니다. 하지만 봉사활동으로 인정되는 헌혈은 1년에 2회로 제한돼 있어서 연간 8시간밖에 안 되네요…. 교육부가 내년부터 대입에서 '인성평가'의 비중을 늘리겠다고 발표했으나 제대로 된 평가기준이 마련될지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교육과정에 의무화된 인성교육의 대표적인 항목인 봉사활동이 여전히 '시간 때우기' 식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교육부의 방침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현재 봉사활동 권장시수로 초등학교 1~3학년은 5시간 이상, 4~6학년은 연간 10시간 이상, 중학교는 연간 15시간 이상, 고등학교는 연간 20시간 이상을 권장하고 있다. 학교는 보통 한 학기에 1회씩 특정 날짜를 잡아 4시간짜리 봉사활동 계획을 세우는데 이 때문에 해마다 교사들은 고민이 많다. '봉사'라는 본래 취지에 맞는 프로그램을 짜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대개 '장애인 인식 개선'이나 '구호단체의 활약'과 같은 영상물을 교실에서 시청한다. 교사들은 "이런 콘텐츠를 접하는 것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봉사활동이라고 하기에 민망할 때가 많다"며 "엎드려 자는 아이들을 깨우느라 바쁘다"고 호소한다. 외부 활동을 실시하는 경우 '길거리 캠페인'이나 '학교 주변 쓰레기 줍기' 등을 실시하지만 이것도 건성건성인 경우가 많다. 서울의 한 인문계고등학교 1학년 담임교사 이모(33)씨는 "바깥 활동에 수백 명이 한꺼번에 나가다 보니 봉사활동보다는 학생들 안전 지도에 정신없다"며 "쓰레기를 줍는 둥 마는 둥 줄지어 학교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와서는 봉사활동 시간을 4시간이나 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의미 있는 봉사활동을 계획하는 일이 쉽지 않은 것은 우선 많은 학생이 한꺼번에 방문할 만한 시설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원봉사가 필요한 노인복지시설이나 장애인복지시설 등은 동시에 단발성으로 몰려드는 학생들을 매번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토로한다. 장애아동복지시설의 한 관계자는 "시설에 있는 인원에 맞게 어느 정도 제한된 규모의 학생들이 와야지 한꺼번에 우르르 와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며 "실제로 도움이 되려면 일회성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방문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학교 입장에서는 학급별·소규모로 나눠 이런 곳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반별로 따로따로 나가게 되면 그때마다 학년 전체의 수업시간 조정 등이 필요한 데다 해당 교사가 자리를 비우므로 다른 학생들의 수업 결손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적 제약 때문에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진다. 경기도의 한 인문계고등학교에서는 수학여행과 봉사활동을 한데 묶어 실시했다가 학생들로부터 불만이 속출했다. 2박3일 일정 가운데 첫날에는 꽃동네를 방문해 봉사활동을 하고 다음 날 하루를 수학여행 일정으로 잡은 것이다. 학사일정이 빠듯하다 보니 따로 봉사활동 시간을 빼기가 어려워 고안(?)해낸 방안이지만 '모처럼 놀고 싶은' 학생들은 왜 하필 그때 봉사활동을 해야 하냐며 불만을 터뜨려 결국 이도 저도 아닌 프로그램이 돼버렸다. 교육부와 각 시도교육청은 지난 몇 년간 형식적인 봉사활동이 아닌 하루 전체를 할애하거나 1박2일 정도의 외부활동을 계획해 '실질적' 봉사활동을 하라고 권장해왔으나 이마저도 세월호 참사 이후 위축돼버렸다. 학생들이 개인적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경우에도 부작용이 없지 않다. 특히 보건복지부가 2010년부터 헌혈 1회당 4시간의 봉사활동 시간을 부여하기로 한 이후 학생들이 헌혈을 '스펙' 쌓기로 인식해, 아무 대가 없이 자신의 혈액을 기증하는 본래의 취지가 많이 훼손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윤주 기자 sayyunju@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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