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여담]산타를 기다리는 어른들

과연 군사작전을 방불케한다. 언니, 동생, 이모, 친구, 친구의 친구까지 죄다 동원했다. '500개 한정' 인터넷 판매에서 딱 1개만 걸리면 그만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500분의 1, 가능한 확률이라 여겼다. 운명의 순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신속하고 과감하게 마우스 버튼을 클릭, 했건만 500분의 1은 불가능한 확률이었다. 모니터 화면에 뜬 '품절' 두 글자에 그녀는 그만 맥이 풀렸다. 작년에 또봇이었다면 올해는 다이노포스다. 작년에 첫째 아들이었다면 올해는 둘째 아들이다. 온라인 쇼핑몰을 아무리 뒤져도 장난감 로봇은 씨가 말랐다. 인터넷 한정판은 하늘의 별 따기다. '산타 할아버지가 로봇을 '꼭'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는 둘째를 그녀는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 순간 산타가 절실한 것은 그녀의 아들이 아니라 그녀였다. 품절의 위기에서 그녀를 구원해줄 산타. 어제 점심에 만난 또 다른 그녀는 남자 친구가 산타일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었다. 크리스마스 선물에 대한 기대는 확고했다. 무슨 선물을 갖고 싶은지 남자 친구가 물어봤냐고? 그러면 하수다. 눈치코치로 맞춰야 한다. 그것이 '사랑의 증표'다. 사랑한다면 마땅히 상대의 심리를 꿰뚫어야 한다는 그녀의 말을 듣고 있자니 어쩐지 남자 친구가 안쓰러워지는 것이다. 돈은 돈대로 쓰고 구박만 받을까봐 심히 걱정되는 것이다. 저 남자 친구도 산타가 필요하겠구나 싶은 것이다. 산타클로스라는 이름이 처음 문헌에 등장한 것은 1773년이다. 오늘날 터키 지역의 주교였던 성 니콜라우스의 선행이 유럽과 미국으로 전해지면서 크리스마스 캐릭터로 자리 잡았다. 1863년 미국 만화가 토머스 나스트가 산타를 하얀 수염과 뚱뚱한 몸매로 묘사하고, 미국 인쇄업자인 루이스 프랭이 붉은옷의 산타가 그려진 크리스마스 카드를 내놓으면서 지금의 캐릭터로 굳어졌다.  그런 산타가 2014년 설밑 대한민국에서 절실한 것은, 이 땅에 헐벗고 곤궁하고 불안한 영혼이 즐비해서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랑의 증표를 확인하려는 그녀들 뿐만이 아니다. 경쟁에 지치고 노동에 찌들고 갈등에 숨막히는 소시민들에게도 산타의 기적이 절박하다. 살을 에는 한파에 취업 전선을 누비고, 실적 달성에 초조해하고, 전단지를 추스리고, 일용직 앞자리를 지키고, 철탑에 매달려야 하는 내핍과 궁핍과 결핍에 프로포폴 같은 희망과 위안과 안식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니 이 순간 누군가 행복을 전한다면 그가 바로 산타다. 우리가 우리에게 서로 산타가 돼야 마땅한 크리스마스다. 이정일 산업2부장 jaylee@asiae.co.kr<후소(後笑)><ⓒ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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