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백재현 뉴미디어본부장]오늘은 1941년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가 이끄는 일본의 연합 함대가
진주만을 공습하기 위해 출발한 날입니다. 소위 '대동아 전쟁'의 시작입니다. 일본이 선전포고도 없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한 것은 미태평양함대를 무력화시킴으로써 동남아시아 일대를 쉽게 장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백재현 뉴미디어본부장
일본군은 항공모함 6척에 총 450대의 항공기를 싣고 몰래 하와이에 접근해 한나절도 못돼 미태평양함대를 쑥밭으로 만들었습니다. 12척의 미 해군 함선이 피해를 입거나 침몰했고, 188대의 비행기가 격추되거나 손상을 입었으며 2,471명의 군인과 민간인이 죽었습니다. 이에 비해 일본군 사망자는 64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렇지만 일견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이 공습으로 300만 명에 달하는 일본군과 민간인이 죽고 마침내는 일본이 패망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진주만 공습에서 일본은 2가지 결정적인 실수를 범했습니다. 하나는 미군의 주력이라 할 수 있는 항공모함을 격파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미군의 항공모함의 대부분은 진주만에 없었죠. 다른 하나는 유류 저장시설을 파괴하지 못한 것입니다. 당초 목적과는 달리 미군에 결정적인 피해를 안기지 못했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1년도 안돼 피해를 복구했습니다. 게다가 국민들을 의식해 예산을 지원하지 않던 미국 의회로 하여금 전폭적인 예산을 하는 계가 됩니다. 결국 미국은 일본 본토까지 공습하는 등 대반격을 가하죠.2012년 개봉된 일본 영화 ‘연합함대 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에는 전쟁을 반대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는 미국 유학을 했고 주미 일본 대사관에서 무관으로 근무한 적이 있어 미국의 경제력과 잠재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국가 차원에서 전쟁이 결정되자 어차피 전쟁을 해야 한다면 기습공격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혀야 한다고 판단했고 그 결과가 진주만 공습이었던 것입니다.한편 야마모토는 진주만 공습 이후 약 1년 반 가량 지나서 정찰 중 미군에 요격돼 숨지고 맙니다. 당시 미국은 일본군의 암호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일본도 미국도 야마모토의 죽음을 곧바로 알리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전황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했을 테고, 미국은 자신들이 일본의 암호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일본인 암호를 전부 바꿔 버릴까봐서죠.백재현 뉴미디어본부장 itbria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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