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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태진 기자]오랜만에 만난 한 대형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대뜸 하소연부터 했다. 그는 3분기 실적을 내놓은 담당 종목의 목표주가를 40% 가까이 낮추고 나서 익명의 투자자로부터 항의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그의 말을 빌려 투자자의 불만을 요약하면 "실적이 다 나온 다음에 목표주가를 왕창 내리면 어쩌자는 것이냐", "목표주가를 그렇게 내려놓고 투자의견은 '매수'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다. 그는 그러면서 몇몇 다른 증권사 애널리스트도 비슷한 전화를 받은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고 했다. 그의 말에 연민마저 느껴졌다. 한껏 격앙된 투자자에게 주가수익비율(PER), 기업가치/세전영업이익(EV/EBITDA) 등 각종 산정지표에 근거한 분석이라는 말이 통하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은 미루어 짐작이 가능하다. 증시가 좀처럼 활력을 찾지 못하면서 애널리스트들의 '어닝시즌 나기'가 훨씬 팍팍해지고 있다. 투자자들의 불만에 수긍을 못하는 바는 아니다. 기업 분석보고서가 주가에 후행해 등장하는 것이 워낙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실적 발표 전 '성적표'가 대부분 반영된 주가보다 20~30% 정도 높은 가격을 목표가로 써내고 "최근 주가 하락 정도가 심하니 사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 정도를 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차별화된 종목보고서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실제 기업실적 발표 다음날 비슷한 농도의 분석이 여러 증권사에서 봇물처럼 쏟아진다. 앞서 발표된 보고서를 믿고 투자했다가 손실을 본 투자자 입장에서는 울화통이 치밀 노릇이다. 기업실적이 우하향하면서 증시가 가라앉는 시기에는 전설적인 명의 화타(華陀)가 온다 해도 묘수를 찾기 힘들다. 화타는 삼국지의 인물인 관우 장군을 치료한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이런 말로 투자자들에게 '애널의 괴로움'을 대변하고 싶지는 않다. 헌데 이들의 종목 분석 환경이 열악해진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동안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반기마다 한번 정도는 분석 대상 기업을 직접 방문하고 탐방 리포트를 냈다. 하지만 올해에는 이런 사례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기껏해야 코스닥 중소형 상장사를 다녀와서 리포트를 써내는 정도다. 이것도 분석보고서와는 거리가 있다. 그는 "CJ E&M 주가조작 사건에 애널리스트들이 연루된 이후 금융감독당국의 사정 수위가 높아지면서 현장방문 자체를 꺼려하는 상장사들이 크게 늘었다"며 "실적발표 당일 제대로 된 설명을 듣는 것이 유일한 정보 취득 수단"이라고 털어놨다. 일반투자자와 크게 다를 것 없는 게 접근으로 탁월한 종목 통찰력을 발휘해야 한다. 부쩍 늘어난 업무량도 리포트 질의 저하에 만만찮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지난달 말 현재 10대 증권사 애널리스트 수는 549명으로 지난해 말(610명)보다 61명 줄었다. 지난해 1월 645명과 비교하면 100명 가까이 줄어든 것이다. 이토록 엄혹한 구조조정 시기를 보내면서 남은 자들은 '업무 홍수'에 시달리고 있다. 모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에도 전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중 종목커버 비율은 25% 정도 였다"며 "올해는 20%도 안되는 것 같다"고 푸념했다. 이뿐 만이 아니다. 증권사 수익성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회사채 인수 등 이런저런 영업관계에서 '갑'일 수 밖에 없는 상장사들의 눈치도 봐야 한다. 4분기 어닝 시즌도 어느덧 코 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썩 나아질 것 같지는 않아 답답할 뿐이다. 조태진 기자 tjjo@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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