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우진 국제부 선임기자
이달 초 퇴근 길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한 '조선 청화(靑畵), 푸른 빛에 물들다' 전시회를 관람했다. 조선 청화백자는 중국 작품을 본떠 제작되기 시작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명나라풍(風)을 벗어났다. 명나라식 테두리 장식이 지워졌고, 작품성이 뛰어난 회화가 그려졌다. 조선 청화백자를 감상하는 동안 아쉬움과 막막함이 교차했다. 청화백자는 몇 세기 동안 세계에서 가장 값비싸고 대규모로 교역된 품목이었다. 청화백자가 같은 무게의 금보다 더 고가에 거래된 적도 있었다. '저렇게 빼어난 청화백자를 만들고도 세계 시장에 공급하지 않은 채 지냈다니…' 하는 생각에 아쉬웠다. 일본은 정유재란 때 조선 도공을 납치해 청화백자를 생산하도록 한다. 명ㆍ청 교체기에 중국 도자기 생산시설이 파괴돼 중국으로부터 공급이 중단된다. 유럽은 중국을 대신할 다른 공급처를 찾게 된다. 일본이 중국의 공백을 채우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한국ㆍ중국ㆍ일본은 청화백자를 만든 역순으로 산업혁명 이후 세계시장의 조류에 참여했다. 일본이 가장 먼저 산업화의 길에 들어서 강대국으로 부상했다. 이어 한국이 노동집약적인 분야부터 제조업을 키워 세계시장에 제품을 공급하며 경제를 고도화해왔다. 중국은 뒤늦게 출발했지만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은 의류봉제와 신발산업에 손대는가 싶더니 가전, 컴퓨터, 조선에 뛰어들었다. 거대한 몸집의 중국이 뛰기 시작하면서 판이 바뀌었다. 세 나라 제조업의 상호보완적인 분업구조가 깨졌다. 조립완성품 분야에서 삼국의 전면전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 산업과 경제의 미래에 눈을 돌리면 앞이 막막해진다. 중국은 14억명 인구를 거느린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규모의 경제가 경쟁력 확보와 직결되는 산업부터 키워왔다. 그런 산업부터 한국 제조업의 입지가 잠식되고 있다. 안현호 한국무역협회 부회장은 "규모집약형으로 조립 가공하는 가전ㆍ디스플레이 산업이 위협받고 있다"고 분석하고 "중국은 철강 같은 규모집약형 일관공정 산업에서도 조만간 한국과 대등한 수준으로 올라서서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이라고 내다본다. 놀라운 측면은 중국이 추격해오는 양상이 우리 예상을 뛰어넘는다는 것이다. 안 부회장은 지난해 4월 낸 '한ㆍ중ㆍ일 경제삼국지'에서 "스마트폰은 중국의 독자개발 능력이 부족해 당분간 애플이나 삼성, LG를 따라잡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불과 1년, 중국이 스마트폰 세계 1위에 오르는 것은 시간문제로 여겨지게 됐다. 삼성전자의 2분기 세계 스마트폰 출하량은 7491만대로 전 분기보다 15% 줄었다. 애플의 출하량은 3520만대로 19% 감소했다. 삼성전자와 애플의 자리를 중국 업체들이 차지했다. 화웨이는 1분기보다 50% 많은 2018만대를, 레노버는 25% 많은 1580만대를 출하했다. 중국 시장을 더 주목해야 한다. 중국 샤오미는 지난 2분기 중국 스마트폰시장에서 삼성전자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샤오미는 점유율 14%로 삼성전자와 레노버를 앞섰다. 두 회사의 시장점유율은 각각 12%였다. 중원을 장악한 샤오미는 바야흐로 세계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한국 제조업이 갈 방향을 일본이 일부 보여주고 있다. 중국 제조업체에 부품ㆍ소재ㆍ장비를 공급하는 길이다. 일본 제조업계는 스마트폰에서 소니만 남고 모두 철수했지만, 일본 부품업체는 중국 스마트폰용 수요 증가로 가동률을 높이고 있다. 중국 스마트폰을 '가마우지' 삼아 일본 부품업계가 실속을 챙기는 것이다. 안 부회장은 중국의 부품ㆍ소재ㆍ장비 산업 경쟁력은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와 격차가 크다고 말한다. 중국 대기업은 조립완성품에 계속 기회가 있기 때문에 이 분야에 주력할 가능성이 낮다고 내다본다. 이 분야는 앞으로 상당 기간 중국이 추격해올 가능성이 낮다는 말이다. 한국이 잘 만드는 '청화백자'는 중국이 더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다. 한국이 새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할 분야는 '청화백자 안료'나 '가마'를 만드는 일이다. 백우진 국제 선임기자 cobalt100@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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