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여담]'시민'의 소양이 이익의 원천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사회과학에서 흔히 쓰는 용어 중에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는 말이 있다. 각각 다른 시대에 존재하는 사회적 요소들이 같은 시대에 공존하는 현상을 뜻하는데 많은 학자들은 한국사회가 특히 이를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본다. 즉 우리 사회에는 봉건성, 근대성, 탈근대성이 함께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에서의 이 같은 비동시성의 혼재는 개인의 의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아니 개개인의 의식에서의 비동시성의 혼재가 사회에서의 비동시성의 혼재로 주고받는 관계가 된다고 하는 게 더 맞는 말일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한 사람의 의식 속에서의 전근대성과 근대성의 공존을 보여주는 것이 정치적 권리를 행사하는 인간과 경제활동을 하는 인간 간의 이중성이다. 정치적 권리를 행사하는 데 있어서 한국인은 상당히 근대성을 확보했다. 참정권이나 표현의 자유(비록 최근 몇 년간 크게 후퇴해있긴 하지만)를 행사하는 데 있어서 대체로 권리의 억압을 심각하게 받지는 않는다. 그러나 경제활동을 하는 공간에서의 개인은 적잖은 경우 봉건적 관계의 굴레에 매여 있다. 옛날의 신분제를 방불케 하는 관계에서 많은 불합리와 굴욕과 모멸을 견뎌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특성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에선 기업의 문 앞에서 근대화 또는 민주주의가 멈춰버리는 이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고용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영리활동에 대한 인식도 근대화의 사각지대다. 많은 이들이 영리활동은 시민적 덕목과 가치와는 무관하다는 생각, 나아가 이를 무시하고 어겨야 이익이라는 생각이 마치 진리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 진리에 균열을 내는 일들이 종종 발생한다. 최근 사이버 검열 논란을 불러 일으킨 어느 메신저 업체의 수난이 그런 균열을 보여줬다. 이 회사 대표의 말을 들어보면 그는 수완 좋은 기업인이 됐는지는 모르지만 양식 있는 시민은 되지 못한 듯하다. 그는 근대적 의식을 갖춘 건전한 시민이 아니어도 기업활동을 할 수 있다고 본 건지 모른다. 특히 어느 분야보다 '탈근대적'인 기술을 다루는 분야에서 일하는 이가 정치ㆍ시민적 근대의식에선 그렇지 않다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그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의 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었다. 그리고 이 사태를 통해 우리 사회는 지금 기업이 수익을 내기 위해서라도 시민적 소양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라는 화두를 만나고 있다.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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