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여담]담배 독종

"담배 끊은 사람은 상종도 하지 마라"는 A의 농담에 "담배 끊지 않는 사람을 상종하지 마라"고 B가 답한다. 운을 뗀 A도, 말을 받은 B도 흡연자다. 금연자인 나만 홀로 잠자코 술잔을 기울인다. 누구 말이 맞을까 라는 질문을 안주 삼아. 어쩌면 A와 B 둘다 맞는지 모른다. 그 지독한 7㎝ 유혹에서 벗어나는 것도, 백해무익의 유혹에서 달아나지 않는(또는 못하는) 것도 독하긴 마찬가지니까. 이틀 전 가을 전어나 먹자며 동료들과 얼굴을 맞댄 저녁자리는 그렇게 뜻하지 않은 담배 이야기로 애먼 꽁초들만 가열차게 타들어갔다. 흡연자들의 수난시대다. 금연구역이 갈수록 늘고 담뱃값이 겁없이 뛰는 상황을 개탄하는 흡연자들은 이래서 한대, 저래서 또 한대다. 이달부터는 서울시 남대문로 일대가 금연거리로 새로 지정됐다. 명동 롯데백화점 본점 앞 길과 건너편 번화가다. 이 거리를 담배연기 휘날리며 위풍당당하게 걸었던 끽연자들의 모습도 이내 과거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2013년 6월 'PC방 금연법' 이후 음식점, 호프집, 정류장, 공원 등이 줄줄이 흡연을 금하고 있다. 그리하여 흡연가들은 후미진 골목으로, 음습한 그늘로 내몰린다. 도심의 사각지대에서 뻐끔거리는 그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빙하기에 살을 부비며 체온을 지키려 안간힘을 쓰는 공룡들 같기도 하고, 만주 벌판에서 일본 순사 피해 독립 운동하는 애국 투사들 같기도 하며, 뺑뺑이 끝에 찾아온 휴식시간에 눈물 젖은 건빵을 나눠먹는 훈련병들 같기도 하더라. 그 모습이 조금은 측은해 비흡연권만큼이나 흡연권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가도 담뱃값이 4500원으로 인상되면 저 무리에서 몇이나 살아남을지 또한 궁금해지는 것이다. 정부는 담뱃값 인상이 국민건강을 위한 결단이라고 호소하지만 열받은 흡연자들은 세수확보를 위한 꼼수라고 바르르 떤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불꺼진 꽁초요, 불붙은 필터다. 국회 변수만 없다면 담뱃값 인상은 피할 수 없는 대세다.그것이 억울하면 담배를 끊을 일이지만, 이런 척박한 환경에 굴하지 않는 것이 이 시대 애연가로서의 담대하고 의연한 자세라며 저 A와 B는 마지막 한대를 사이좋게 나눠 피우면서 집으로 향하는 것이다. 다만 득의양양한 뒷모습에서 '끊기는 끊어야 할텐데' 하는 속내가 얼핏 비친다. 저들도 담배의 해악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눈치다. 그러니 어차피 상종하지 못할 것이라면 담배를 끊는 편이 이 겨레에 봉사하는 일이라고, 저들을 전도하고 싶은 마음 간절해진다. 이정일 산업2부장 jaylee@asiae.co.kr<후소(後笑)><ⓒ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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