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은정기자
[아시아경제 손은정 기자] "나는 여전히 우승할 수 있다."
톰 왓슨과 프레드 커플스, 베른하르트 랑거, 콜린 몽고메리, 나이를 잊고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서 노장투혼을 발휘하고 있는 선수들이다. 김종덕(53)도 마찬가지다. 시니어투어로 들어서자마자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 상금왕에 등극했고, 지난달에도 우승 소식을 전했다. 20대 선수들도 은퇴를 준비하는 요즈음 그의 롱런비결이 궁금했다. 경기도 성남시 골프연습장에서 50대 베테랑의 여유를 만났다.
▲ 투어 29년의 비결은?= 17살 때 취미로 처음 골프채를 잡았지만 고향 충주에서 당시 충주 MBC문화방송에서 문을 연 골프연습장 관리를 맡아 골프인생이 시작됐다. 김종덕은 "나 역시 배워야 하는 시기였고, 레슨에 (연습장) 운영까지 하느라 녹록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이 고생이 24살이던 1985년 한국프로골프협회(KPGA)의 정회원이 되는 발판이 됐다.
당시 국내 무대는 프로대회가 1년에 4, 5개 수준에 불과했다. 당연히 투어로 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1989년 쾌남오픈에서 첫 우승을 끌어안았고, 신인왕까지 차지하자 이듬해 주니어 선수 학부모들의 레슨 요청이 쇄도했다. 그렇게 2년 동안 생계형 레슨을 했다. "투어 출전을 핑계로 절대 대충 해 줄 수는 없던 상황이었고, 그래서인지 기가 빠져서 내 골프가 안 되더라"고 했다.
'투어와 레슨은 절대 병행하지 않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찾아오는 후배들에게는 무료로 원포인트 레슨을 해줬다. 지금까지 투어에 전념하는 계기가 됐다. "오직 투어만 생각하면서 몸 관리를 했고, 한국과 일본, 아시아 무대에서 무려 29년 동안 활동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찾아오던 후배들에게 미안함이 남은 때문인지 "은퇴하면 무료레슨을 하겠다"는 계획이다.
▲ 외로운 도전= 1996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1997년 기린오픈에서 한국선수로는 한장상(74) 이후 24년 만에 한국인 우승이라는 쾌거를 일궈냈다. 김종덕에게는 그러나 되돌아가기 싫은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 일본 선수들이 인사를 해도 모른 척 했기 때문이다. 지금 말로 '왕따'였다.
재일교포 최종태 야마젠 회장이 큰 도움이 됐다. 1995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유러피언(EPGA)투어에 출전했다가 갤러리로 온 최 회장을 만났고, 한식당에서 우연히 재회했다. 기린오픈 우승 직후 다시 만난 최 회장은 김종덕에게 일본에서 후배 선수들의 터전을 마련할 때까지 꼭 살아남는다는 다짐과 함께 투어생활을 끝낼 때까지 후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통역과 호텔 예약 등 선수 매니지먼트에 해당하는 일들을 최 회장 측에서 도왔다. 일본 무대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받던 김종덕은 그러자 통산 4승을 수확하면서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냈다. 지금은 일본말로 인사하면 "안녕하세요"라는 한국어 대답이 돌아올 정도다. 국내 투어 9승까지, 정규투어에서 한국과 일본 통산 13승을 수확했고, 2011년 만 50세가 되면서 시니어투어로 주 무대를 옮겼다.
▲ 시니어투어는 즐거워= 지난달 한국프로골프(KPGA) 챔피언스투어 2차전에서도 우승해 시니어 무대에서 벌써 7승을 거뒀다. 이야기 내내 얼굴에 웃음이 그득했다. "무엇보다 아내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서 좋다"고 했다. 2012년 미국과 캐나다, 영국의 시니어 메이저 대회에 출전할 때는 한 달간 동행했다. 지금도 유명한 여행지에서 경기가 열리면 꼭 아내를 동반한다.
지난 4월 오키나와에서는 싱글핸디캐퍼인 아내가 캐디까지 했다. 시니어투어는 캐디가 전동카트를 탈 수 있어 가능한 일이다. "(아내가) 캐디를 하고 나면 실력이 더 좋아진다"며 오히려 자청한다"고 했다. 사실 투어 분위기도 정규투어와는 또 다르다. "서로 농담하고 시거를 피우는 등 편안하다"며 "파 행진을 하면 동반자가 '이번엔 보기 한번 해'라고 농담을 던질 정도"라고 소개했다.
드라이브 샷 비거리가 줄었다고 아쉬워하지만 아직은 275야드나 날린다. 호텔에서도 연습도구들을 활용해 틈틈이 몸을 만들 정도로 뜨거운 열의가 동력이다. 시니어 아마추어골퍼를 위한 팁을 달라고 하자 "나이가 들면 유연성이 떨어져 연습장에서도 공을 때리기보다 빈 스윙을 훨씬 많이 해야 한다"며 "오른쪽과 왼쪽 스윙을 번갈아 5대5의 비율로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주문했다.
손은정 기자 ejson@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