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리 발렌타인'의 극작가 윌리 러셀의 작품..1983년 웨스트엔드 초연
뮤지컬 '블러드 브라더스'에서 조정석은 유치원생부터 성인까지 20여년의 세월을 별다른 분장 없이 연기해낸다.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두 개의 큰 줄기로 갈라진 나무 한 그루가 무대를 장식하고 있다. 뿌리는 같지만 서로 다른 쪽을 향해 뻗어나가는 두 줄기는 쌍둥이 형제 '미키'와 '에디'의 운명과 닮았다. 한날한시에 태어난 이 형제의 비극은 이들 사이에 계급격차가 생기면서 시작된다. 여기에 삼각관계와 출생의 비밀까지 겹치면서 이들의 운명은 더욱 꼬여만 간다. 뮤지컬 '블러드 브라더스'는 존스터 부인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한 때 마릴린 먼로처럼 춤추고 노래하길 좋아하던 숙녀는 결혼과 동시에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면서 억척스러운 아줌마로 변한다. 철없는 남편은 떠나가 버리고, 홀로 생계를 책임지던 존스터 부인은 이웃 저택에 가정부 일자리를 구한다. 그녀의 뱃속에는 쌍둥이 아이가 들어 있는 상태였다.그 때 이웃 라이언스 부인은 이 아이들의 운명을 결정짓게 될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한다. 아이를 원하는 라이언스 부인은 쌍둥이 중 한 명을 아무도 몰래 자신에게 달라고 요청하고, 생계에 허덕이던 존스터 부인은 이에 응한다. 이렇게 해서 미키는 생모인 존스터 부인이, 에디는 부유한 라이언스 부인이 키우게 된다. 작품의 묘미는 배우들이 연기하는 미키와 에디의 어린시절 부분이다. 배우 조정석은 축 늘어진 스웨터를 입고 "거진 8살"이라고 주장하는 7살 '미키'를 소화한다. 장난끼 많고, 자유분방한 미키는 화가 나면 어른 욕도 하고, 기분좋으면 소파 위에 올라가서 팔짝팔짝 날뛰고, 손가락으로 소변보는 흉내도 곧잘 낸다. 표정에서부터 말투, 걸음걸이 등 영락없는 7살 조정석이 등장할 때마다 관객석에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미키'는 우연히 또래인 '에디'를 만나게 되고, 이 둘은 서로에게 이끌려 의형제를 맺는다. 서로의 존재를 모르게 하려는 엄마들의 노력이 물거품되는 순간이다. '블러드 브라더스'가 말 그대로 피를 나눈 형제라는 뜻인 것처럼, 이 둘은 영원히 함께 있겠다는 피의 의식도 치른다. 배우 오종혁 역시 온실 속에서 곱게 자라난 '에디'를 자연스럽게 소화한다.
쌍둥이 형제의 비극적인 운명을 다룬 작품 '블러드 브라더스'
이들의 어린 시절을 다룬 1부에 비해 2부의 분위기는 사뭇 심각하다. 1960~1970년대 영국 공업도시 리버풀이란 배경도 한 몫 한다. 학창시절을 거치고, 사회에 진출하면서 둘 간의 경제적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공장에 나가는 '에디'와 대학을 다니는 '미키'의 사이는 더 이상 예전 같지 않다. 급기야 어린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왔던 '린다'가 이 둘 사이를 오간다. 이 모든 과정은 이들의 운명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알고 있는 나레이터에 의해 설명된다. 작품은 연극 '리타 길들이기', '셜리 발렌타인'으로 국내에서도 유명한 영국의 극작가 윌리 러셀의 대표작이다. 1983년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뮤지컬로는 첫 선을 보였다. 지난 달 내한한 연출가 글렌 월포드는 "뮤지컬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작품"이라고 '블러드 브러더스'를 소개했는데, 작품을 보면 그의 말에 수긍이 간다. 배우들의 퍼포먼스보다는 연기력이, 노래보다는 스토리가 훨씬 중요하게 작용한다. 연극에 가까운 뮤지컬이다. 아쉬운 점도 있다. 흥미롭게 전개되던 이야기는 마지막 종착역에 가서 갑작스레 끝나 버린다. 관객들이 여운을 느낄 새도 없이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몰아닥치고, 제대로 된 감정의 교류 없이 비극적인 결말이 성큼 다가온다. 뮤지컬치고는 주인공들의 노래 분량이 적은 것도 팬들의 입장에서는 다소 섭섭하게 느껴질 법한 요소다. 특히 3년 만에 무대로 돌아온 조정석의 솔로 넘버가 한 두 곡에 그친 점이 아쉽다. '미키' 역에는 송창의, '에디' 역에는 장승조가 더블 캐스팅됐다. 9월14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사회문화부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