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디자인은 최소한의 디자인이다.' 산업디자인계의 전설로 불리는 디터 램스의 디자인 10계명의 마지막 계명은 그를 추앙한 이에 의해 애플의 아이폰에 구현됐다. 최고의 음은 무성(無聲)의 음이며 최고의 맛은 무미(無味)의 맛이라는 말처럼 아이폰의 혁신적 디자인은 현대 첨단 기기들의 복잡성 속에서 인간의 본성의 한 측면인 단순성이 얼마나 큰 힘을 갖는지를 잘 보여준다. 축구에 왜 사람들이 열광하는지에 대한 한 해답도 여기에 있다. 그 단순성이다. 이를 테면 야구를 하려면 적잖은 장비를 갖추고 그 방대한 규칙부터 학습해야 하지만 축구는 그저 공을 차고 보기만 하면 되는 너무도 단순한 운동인 것이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더욱 많은 경기 데이터들, 예컨대 선수 개개인의 이동거리와 최고 시속까지 분석해주는 많은 수치들이 이 경기의 단순성에 복잡성을 입히려 하는 듯하지만 경기장 밖의 여하한 시도들에도 불구하고-혹은 그로 인해 더욱 더- 축구는 여전히 선수들의 맨몸에서 시작돼 맨몸에서 끝나는 운동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축구는 인류가 빚어낸 신성한 유희이며 현대적 관습과 규제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자유와 창의의 아름다운 몸놀림'(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이라는 찬사도 결국은 맨몸의 동작이 주는 아름다움에 대한 예찬이다. 그 단순성은 인간의 본성의 또 다른 측면인 호전성과도 잇닿아 있다. 전방과 후방으로 나뉜 전열로 적의 영토를 점령하기 위해 가죽으로 된 창칼을 몰고 돌진하는 것은 축구야말로 '전쟁과 놀이 간의 근친성(近親性)'(요한 하위징아)을 가장 분명히 보여주는 스포츠라는 점을 보여준다.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의 전쟁 초기에 크로아티아 민병대가 주로 축구팀 자그레브의 응원단 조직에서 충원됐다든가 전범인 세르비아 군사령관 아르칸도 레드스타 베오그라드의 팬클럽 회장이었다(사이먼 쿠퍼, '축구전쟁의 역사')는 사실은 축구에 잠재된 그 호전성의 한 일화다. '축구전쟁'은 그러므로 '축구로 전쟁을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적확한 말이다. 월드컵이 그 많은 추문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또 그렇게 비판하는 이들조차 열광케 하는 축제가 되고 있는 것은 더욱 세상이 전장 같아지기 때문이다. 그 전쟁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진짜 전쟁을 하지 않으려 축구로 전쟁을, '순치된 전쟁'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사람들은 TV 앞에서, 거리에서 이 축제에 참가하는 것이며, 이 전쟁에 '참전'하는 것이다.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사회문화부 이명재 기자 promes@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