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형 미조지 폭스대 객원교수
5월에 방문했던 미국 뉴욕의 9ㆍ11 추모공원에는 특별한 나무 한 그루가 눈길을 끌고 있었다. 9ㆍ11 테러로 세계무역센터 빌딩 두 채가 무너져 내린 현장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배나무다. 당시 사고 현장의 화염과 잿더미 속에서 절반이 잘린 채 발견된 이 나무의 겉모습은 불에 타서 죽은 다른 나무와 비슷했지만 가지 끝에 초록 잎이 남아 있다는 것이 유일한 차이점이었다고 한다. 소방관들은 이 나무에 생명이 있다고 판단해 브롱크스 공원으로 옮겨 심는 특별 프로젝트를 실행했다. 브롱크스 공원의 양지바른 곳에 이 나무를 온전하게 살려내는 데 들어간 시간은 10년. 추모공원 개장에 맞춰 11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나무의 밑둥치와 가지 아랫부분은 까맣게 탔지만 그 위로 새롭게 돋아난 가지는 제 색깔을 지니고 있어 뚜렷한 대조를 보여준다. 새롭게 돋아난 가지에 무성하게 달려 있는 초록 잎은 햇살에 반짝이며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나무를 '생존나무(survival tree)'라고 부른다. 추모공원에는 두 곳의 추모연못이 있는데 쌍둥이 빌딩을 상징한다. 그 폭포를 둘러싼 동판에는 2983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1993년 세계무역센터 지하주차장 테러사건과 2001년 9ㆍ11 테러로 인한 희생자, 현장에서 구조작업을 하다가 숨진 소방관, 경찰 등의 이름이다. 동판에 새겨진 이름을 보면 별다른 질서가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특별한 과정을 거쳤다. 가족, 친구, 사랑하는 연인, 그리고 함께 일했던 동료 등의 이름이 나란히 배치됐다. 2983명의 가족 또는 친구, 친지들로부터 이름 배치에 대한 요청을 받았고, 그 요청에 따라 최선을 다해 정렬한 것이다. 소방관과 경찰이었던 형제의 이름이 나란히 새겨진 것, 비행기를 함께 탔던 가족의 이름이 함께 새겨진 것 등이 이런 과정을 거쳐 가능하게 되었다. 이름을 배치하는 과정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특별한 의미를 가진 과정이었으며, 또한 치유의 과정이기도 했다. 동판에 새겨지는 이름이라도 서로 사랑하고, 함께하고픈 사람들을 묶어주기 위해 끈질긴 노력을 기울인 것이다. 추모공원을 나서면 바로 앞에 있는 소방서 벽에 동판 벽화가 설치돼 있다. 벽화에는 용감하게 인명 구조작업을 하고 있는 소방관의 모습이 새겨져 있고 "우리는 영원히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있다. 9ㆍ11 테러 현장에서 인명을 구하고 현장을 수습하려다 목숨을 잃은 343명의 소방관을 추모하는 벽화다. 옆에는 343명의 사진과 이름, 당시 직책 등이 쓰여 있는 큰 액자가 걸려 있다. 지난 5월15일에는 추모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테러가 나기 전의 모습을 일부 간직하고 있는 지하 공간에 의미 있는 여러 가지 자료 등을 모았는데 개장 이후 많은 관람객이 박물관을 찾고 있다고 한다. 세월호 사고는 우리 모두에게 너무 큰 아픔이다. 아직도 10명이 넘는 실종자가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사후 대책도, 같은 사고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세워야 하는 안전 대책도 아직 부족한 상황이다. 9ㆍ11 테러 추모공원을 방문하면서 가장 배우고 싶은 것은 바로 10년이 걸려서라도 나무를 살려낸 정성과 끈기, 몇 년이 걸리더라도 희생자의 이름을 최대한 존중하고 예우하는 방식으로 정렬하는 노력과 마음가짐이었다. 시한을 정해서 단기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우리의 자화상이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숭례문 복원사업에서도 충분히 그 폐해를 보지 않았는가. 10년이 걸리든, 20년이 걸리든, 정권이 바뀌어도 멈추지 않고 굳건하게, 끝까지 사후대책, 안전대책, 추모공원 건립 등을 해내야 한다. 국민도 그 과정을 잊지 않고 끈기 있게 지켜보고 참여해야 한다. 이은형 미조지 폭스대 객원교수<ⓒ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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