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성이든 후천에 의한 것이든 사람들은 새로운 것에 눈길이 가게 마련이다. 우리가 늘 낯선 곳을 찾아 나서는 것,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 가보고 싶은 것, 그것은 우리의 후각과 미각이 진귀한 풍미에 끌리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여행을 할 때 우리는 먼저 그곳이 자신이 떠나온 곳과 얼마나 다른지를 애써 발견하려고 한다. 그러나 견문이 넓어지고 시야가 트이면 그 전까지 신기하게만 보였던 곳들이 실은 자신이 떠나온 곳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다른 것 속에 같은 것이 있으며 같은 것 속에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그것은 낯선 곳에서 자신이 원래 서 있는 곳에 대해 새롭게 재발견하는 것이다. 다른 것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더 깊이 알게 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요컨대 우리는 넓이를 통해 깊이를 얻는 것이다. 우리의 시야가 1m 넓어질 때 우리는 또한 1m 더 깊어지게 되는 것이다. 넓이와 깊이는 이렇게 서로를 도와주고 견인해 주는 것이다. 값진 여행은 이 같은 확장과 심화에 이를 때 가능할 것이며, 바로 그것이 진정한 '관광', 즉 '빛을 찾는 것으로서의 관광(觀光)'에 이르는 길일 것이다. 그렇게 사물을 바라보는 빛을 갖게 되면, 그때 우리는 굳이 멀리 나가지 않더라도 자신이 늘 보던 것에서 새로운 것을 보게 된다. 비행기를 타고 나가지 않더라도 항상 멀리 나가는 것이며 낯선 곳에 발을 들여놓지 않더라도 신세계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저 먼 나라 그랜드캐니언의 장관에 못잖은 경이를 주말마다 오르는 북한산에서도, 동네 뒷산의 범상했던 풍경에서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새롭게 본다는 것은 결국 진부한 것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무언가를 제대로 본다는 것은 두 번 보는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넓게 보고 깊게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뭔가가 새롭다는 것은 실은 대상의 새로움이 아니라 그걸 바라보는 이의 관점과 시야의 새로움이다. 시야와 안목의 넓이와 깊이다. 아마도 이 점에 '새로운 것'을 내세우는 모든 일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요체가 있는 듯하다. 요즘 '새로운 정치'를 내세우는 정당이 진짜 새로운 것에 못 미치는 게 있다면 바로 이 점에 결여가 있는 건 아닌지 성찰이 필요할 듯하다. 그리고 그런 성찰은 다른 어떤 일보다 새로운 것의 전달자를 자임하는 '신문(新聞)'에야말로 많이 필요할 것이다.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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