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서]고마운 실험실

김도현 국민대 교수

사회과학이 과연 '과학'인가 하는 논쟁이 있습니다. 사회과학이 비록 과학적인 방법론을 사용한다는 의미에서 과학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지만, 사회를 대상으로 자연과학처럼 반복 실험을 통해 재현성을 확보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 논란거리입니다. 어떤 자연과학자들은 사회과학이 과학이 아니라고 공격해왔고, 그 반발로 일부 사회과학자는 자연과학 역시 연구자의 주관성이 강하게 개입할 수 있다는 점을 밝혀내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 기업이라는 연구 대상이 이공학 분야처럼 조건을 엄밀하게 통제해 실험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점이 아쉬울 때가 많습니다. '완전히 똑같은 출발선상에 있는 기업들을 충분히 확보한 뒤 한 그룹에게는 A라는 전략을, 다른 그룹에게는 B라는 전략을 택하도록 해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허무맹랑한 공상을 해보기도 하는 것이지요.  이런 한계 때문에 사회과학 분야에서 과학적인 검증을 완벽히 통과한 이론은 매우 적습니다. 자연과학에서 빠른 속도로 새로운 지식이 만들어지는 것과는 딴판이지요. 경영학 분야도 그렇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경영이론이 등장하지만 그들 가운데 과학적인 검증을 통과했다고 학자들이 동의한 것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그렇지만 경영 분야에는 너무 당연해 보이고, 또 이런저런 경험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믿는 통념들이 많습니다. '직원들이 장시간 열심히 일하는 기업은 성공 가능성이 높다' '이왕이면 좋은 학벌을 가진 직원들을 뽑는 것이 기업에게 이롭다' '핵심 인재들에게 파격적인 성과 보상을 하면 기업의 성과가 올라간다….' 어떻습니까? 너무 당연해 보이지요? 대부분의 경영자들은 이런 통념을 근거로 경영 의사결정을 내립니다. 그리고 그럭저럭 잘해갑니다.  그런데 가끔 뚱딴지 같은 경영자들이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근무시간을 아예 무시하자고 생각한 창업자가 있습니다. 출퇴근을 각자 마음대로 하라는 것이지요. 그랬더니 아무도 없는 새벽 시간에만 일하러 나오는 괴상한 직원도 생겨납니다. 채용 방법도 이상합니다. 이 회사는 지원자들과의 온라인 채팅으로 1차 선발을 합니다. 학력은 무시합니다. 1차 선발된 사람은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됩니다. 시급도 똑같습니다. 몇 주 동안 밤이나 주말 등을 이용해 아르바이트를 하게 합니다. 그동안 서로 맘에 맞으면 채용이 이뤄집니다. 여러모로 괴상한 이 회사는 아주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 회사의 이름은 오토매틱(워드프레스라는 블로그 소프트웨어로 유명)입니다. 창업자인 맷 멀렌워그는 자신의 직감에 따라 회사를 이렇게 운영합니다.  또 다른 상식 가운데 '핵심 인력에게 파격적인 연봉이나 성과급을 통해 동기 부여를 해야 한다'는 것이 있습니다. 최근 등기임원들의 연봉이 공개되면서 우리나라 주요 기업 대부분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점이 확인되기도 했지요. 그런데 보상에 대해 '구성원 보상수준 상위 10%와 하위 10%의 수준이 평균 3배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합니다'고 써놓은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다음커뮤니케이션즈입니다. 별 탈 없이 잘 돌아갑니다. 이처럼 통념에 도전하는 기업들은 학자들에게 귀중한 실험실과 같습니다. 연구자들에게 일종의 대조군이 돼 줘 상식이 과학적인지 검증하는데 큰 도움을 주지요. 그러나 이들의 가치는 학문적인 데 그치지 않습니다. 때로 이런 기업들의 담대한 선택은 우리가 감히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는 용기를 주기도 하니까요. 방글라데시의 소액대출 은행 그라민뱅크가 바로 그런 예이겠지요. 그래서 저는 이런 담대한 기업들이 더 많이 탄생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연구자로서, 또 동시대인으로서.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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