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 김은별 기자]패션 부문을 떼어내고 전자소재 전문기업으로 다시 태어난 제일모직이 삼성SDI의 품으로 향했다. 삼성SDI와의 합병은 다소 의외였다는 것이 관련 업계의 관전평이다.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삼성전자와의 합병하거나 화학계열사인 삼성석유화학으로 합병해 3세 후계 구도를 명확히 할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였지만 껍질을 깨고 보니 예상과는 전혀 달랐던 것이다. 31일 삼성SDI와 제일모직은 이사회를 열고 두 회사의 합병을 결의했다. 삼성SDI가 제일모직을 흡수합병하고 제일모직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합병한 뒤 삼성SDI라는 사명을 그대로 사용한다. 삼성SDI와 제일모직의 합병은 지난해부터 진행돼온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사업 구조조정의 일환 중 하나다. 그룹 내 중복 사업을 정리하고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향으로 계열사들의 사업영역을 조정해온 결과인 것이다. 특히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 당시 '업의 본질'을 강조하며 각 계열사별로 진행해온 업의 본질과 역할이 20년 만에 바뀌었다는 점에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삼성SDI는 지난 1970년 창립 당시 삼성-NEC 주식회사로 시작한 뒤 1974년 삼성전관공업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1984년에는 삼성전관, 1999년에는 삼성SDI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SDI의 S는 SAMSUNG을 의미하고 D는 Display, Digital, I는 Interface, Internet Component를 의미한다. 주력 사업들로 사명을 지은 것이다. 2010년부터는 디스플레이라는 이름을 떼어내며 친환경 기업으로 고유명사화한 SDI를 사용하고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삼성SDI는 초기 브라운관 제조업을 시작으로 PDP 패널을 제조하며 디스플레이 업체로 자리잡았다. 지난 20년 동안 삼성SDI의 업의 본질은 '최고의 화질'이었다. 지난 2008년부터는 에너지 사업을 시작하며 '최고의 화질과 친환경 에너지'가 업의 본질이 됐다. 2011년부터는 '친환경 에너지와 소재'가 업의 본질로 자리잡았다. 이번 삼성SDI의 제일모직 합병은 이 같은 업의 본질에 맞춰 진행됐다. 에너지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배터리는 소재 관련 기술이 핵심이다. 배터리 산업에서 승리의 공식은 더 작게 만들고 더 많은 용량을 담는 것이다. 소재 기술이 가장 중요한 경쟁력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삼성SDI 관계자는 "제일모직이 갖고 있는 소재 기술은 배터리 산업 경쟁력의 핵심 동력이 될 것"이라며 "기존 제일모직의 반도체, 디스플레이 소재 기술에 이어 에너지, 자동차 소재 등 핵심 경쟁력이 본격적인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일련의 사업구조조정은 새로운 '업의 본질'에 기반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제일모직은 패션사업을 삼성에버랜드에 양도했다. 언뜻 보면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삼성에버랜드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다. 트렌디한 소비재 산업이라는 측면에서 패션사업과 맥이 닿는다. 삼성에버랜드는 제일모직의 패션사업을 흡수한 뒤 기존 자원을 활용해 패션사업과 연계하는 등 시너지 발굴에 주력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삼성에버랜드는 건물관리 사업을 에스원에 양도하고 급식과 식자재 사업은 물적 분할했다. 핵심역량에 집중하는 한편 에스원이 갖고 있던 보안 솔루션에 건물관리 사업을 넘기며 주요 계열사의 성장 기반을 마련했다. 삼성SDS 역시 업의 본질이 확대되며 삼성SNS를 합병했다. 각종 데이터 서비스가 네트워크와 연계되고 있는 시점에서 삼성SNS와 합병을 통해 글로벌 네트워크 시장에 삼성SDS의 역량을 더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 할 방침이다. 삼성디스플레이와 삼성코닝정밀소재의 지분 정리는 LCD 유리 기판을 코닝에 넘기고 소재 원천 기술을 갖고 있는 코닝 분사 지분을 취득해 삼성디스플레이의 업의 본질이 차세대 소재 선점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계열사들의 사업재편을 놓고 일각에선 후계 구도에 맞춰 생각하는 경향이 짙었는데 이번 삼성SDI의 제일모직 합병에서 볼 수 있듯이 철저하게 사업 시너지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서 "어떻게 하면 앞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여전히 진행 중이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계열사별 역량을 극대화 해야 한다는 것이 답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명진규 기자 aeon@asiae.co.kr김은별 기자 silverstar@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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