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배우면 도태'…學을 떼는 직장인 노이로제

'공부에 미쳐라'…샐러던트 실태

[아시아경제 지연진 기자]올해 초 외국계 회사로 옮긴 김모 팀장(33, 여)은 주중이면 새벽 5시에 일어난다. 출근 준비를 마친 김씨가 향하는 곳은 여의도의 한 영어회화학원. 김 팀장은 지난 달부터 매일 아침잠을 몰아내며 영어공부에 매진 중이다. 오전 6시40분부터 시작되는 회화수업이 끝나는 시간은 아침 8시10분, 김 팀장은 부랴부랴 회사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출퇴근길은 물론 조깅 등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스마트폰 앱을 통해 영어 강연을 듣는다. 외화나 드라마와 달리 정제된 영어를 들을 수 있고 다양한 영어표현도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직장인은 고달프다. 눈 뜨자마자 일터로 직행, 하루 종일 업무와 씨름한다. 저녁 무렵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면 파김치가 되기 십상이다. 사사건건 태클을 걸어오는 상사 눈치도 봐야하고, 하루가 다르게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도 견제해야 한다. 어쩌다 회식까지 있는 날이면 '다크서클'이 목까지 내려올 정도로 피로감은 극에 달한다. 하지만 하루하루 삶의 무게가 더해가는 상황에서도 자기계발에 집중하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공부하는 직장인을 일컫는 '샐러던트'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다. 직장인(salaried man)과 학생(Student)을 합친 말이다.  
최근 취업포털 커리어가 직장인 7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1.8%가 직장생활과 공부를 함께하고 있다고 답했다. 온라인 취업포탈 사람인(www.saramin.co.kr)이 직장인 109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절반 이상(53.5%)이 영어와 중국어 공부 등 자기계발에 매진했다. 사람인 조사에 따르면 직장들이 자기계발에 투자하는 시간은 일주일에 평균 4.4시간이었고 자기계발 비용은 한 달 평균 12만원을 지출했다.  ◆자기계발은 직장인의 숙명 = 회사업무 만으로도 하루가 모자란 직장인들이 시간을 쪼개 공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 팀장의 경우 이직한 회사가 외국계인 탓에 영어 사용이 많아 새벽 공부를 시작했다. 미국에 있는 본사와 이메일이나 화상전화로 업무를 공유하면서 '읽고 쓰는 것'은 물론 자유로운 '말하기와 듣기'가 필수가 된 것이다. 10여년 만에 다시 마주한 영어는 골치 덩어리다. 하지만 수면부족에 시달리며 공부한 보람은 남았다고 한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영어 강연을 반복적으로 듣고 영어 라디오 뉴스를 듣다보니 듣기 실력을 날로 늘었다. 김 팀장은 "어느 날 헬스장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며 영어 라디오 듣고 있는데 내용을 이해하고 혼자 웃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며 "처음엔 언제 영어실력이 늘려나 걱정했는데 이제 욕심이 생겼다. 영어공부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커리어 조사결과를 보면 직장인들의 공부하는 분야는 영어가 24.5%로 가장 많았다. 업무와 관련된 공부도 21.6%로 그 뒤를 바짝 쫓았다. 사람인 조사에선 응답자의 41%가 자기계발로 언어 공부를 꼽았다. 외국계 기업 등 영어를 자주 사용하는 업종에선 공부는 선택이 아닌 필수인 것이다. 김 팀장은 "자기계발은 직장인의 숙명"이라며 "정체되거나 도태되지 않기 위해선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사람인에 따르면 직장인의 자기계발 이유는 1위가 이직이나 전직(29.1%)을 위해서였다. 특히 평사원과 대리급은 각각 32.8%와 31.8%가 이직이나 전직을 위해 자기계발을 한다고 답했다. 과장급과 부장급 이상은 자기계발의 첫 번째 이유로 자기 만족을 꼽았다.  ◆자기만족ㆍ커리어 관리ㆍ인맥쌓기도 도움 = 일부 직장인들은 자기만족이나 커리어 관리를 위해 샐러던트의 삶을 선택했다. 사람인의 조사에선 직장인 24.2%가 자기만족을 위해 자기계발을 하고있다고 답했고, 이력관리를 위해서는 답변도 11.1%에 달했다. 올해 직장생활 10년차인 박모씨(34, 여)가 대표적인 사례다. 박씨는 자기만족을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2년 전, 친구들은 시집가서 아기를 갖았다. 미혼인 박씨가 선택한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투자였다. 이직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박씨는 "친구들이 자녀에게 투자를 했다면 저는 제 자신에게 투자를 선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직장생활만 할 때는 나무만 봤는데 이제는 숲을 보고있다"며 "대학교 졸업 이후 (지식을) 빼서 쓰기만 했는데 이제는 채우는 느낌"이라고 힘줘 말했다. 하지만 일과 대학원 공부를 병행하는 것은 고단했다. 주중에는 저녁식사를 김밥과 샌드위치로 때우며 야간 강의를 듣고, 주말에도 밀린 과제로 제대로 쉬지 못한다. 그는 "다음 달에는 중간고사에 졸업을 위한 논문자격시험, 영어시험 등이 기다리고 있다"며 "매일 자정께나 집에 들어가는데 졸업을 못할까봐 걱정"이라고 덧붙였다.함께 공부를 하면서 만나는 인맥은 부수입이다. 지난해 Y대 대학원에 들어간 직장인 김모씨(33, 남)는 현재의 업무와 관련된 전공을 선택했다. 대학원 공부를 통해 업무 이해도가 깊어진 것도 대학원 공부의 장점 중 하나지만 학교에 갈 때마다 같은 분야에 있는 인맥을 넓히는 것을 가장 큰 소득으로 꼽았다. 김씨는 ""다른 분야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 간접경험을 하는 것도 만족한다"고 말했다.  ◆치열한 경쟁 속 자기계발 강박증도 = 직장인들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기계발에 나서면도 부작용도 생긴다. 남들보다 뒤쳐질 것이라는 부담감 때문에 자신을 채찍질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사람인의 조사 결과 직장인의 절반 이상(57.3%)은 자기계발에 대한 강박증을 갖고잇다고 답했다. "자기계발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는 답변이 65.3%(복수응답)에 달했고, 36.3%가 "아무것도 안하면 불안하다"고 했다, '주변에서 자기계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주말에도 마음 편하게 쉬지 못한다'는 직장인도 있었다. 지연진 기자 gyj@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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