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들의 사생활-14장 흐르는 강물처럼(241)

“너 정말 대학 가고 싶니?”짙은 갈색 눈을 향해 하림이 말했다. 소연이 훗, 하고 웃었다. “옛날 이야기죠. 나이도 나이지만 그 깐 대학 나오면 뭘 해요. 대학 나와도 취직 못한 친구들이 수두룩한데.... 돈도 없구.” “하긴.....”하림이 말끝을 흐렸다. 약속했던 말이라 꺼내긴 했지만 자기가 생각해도 신통치 않은 일이었다. 다들 목을 떼놓고 대학 들어가야겠다고 바둥거리지만 정작, 있는 돈 없는 돈 다 들여 마치고 나와도 고등 실업자 되기 쉬운 것이 요즘 세상이었다. 자기 꼴만 해도 그랬다. “그러지 말고 우리 장사나 할까?”하림이 농담 삼아 말했다.“무슨 장사.....?”소연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았다.“음. 뭘 할까....? 그래, 우선 작은 트럭을 하나 사자. 그리고 그 위에 떡볶기나 순대, 튀김 등을 싣고 학교 앞이나 유원지로 돌아다니자. 어때....?”그제야 농담인줄 안 소연이 싱겁게 웃었다.“겨우.....?”“농담 아니야. 내가 아는 어떤 아저씬 그렇게 계절별로 갖가지를 들고 다니며 팔다가 지금은 그럴 듯한 가게까지 열었다니까.”하림이 제법 정색을 하며 말했다.“어느 세월에.....? 장사가 그렇게 쉬운 줄 아세요?”“쉽지야 않겠지. 하지만 일단 시작해보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가만 생각해봐. 난 백수고, 넌 백조잖아. 백수와 백조가 뭘 못해? 글고 아직 우린 젊잖아.”농담이 진담 된다고, 말을 하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진지해졌다. “좋죠. 생각 좀 해보죠. 하림 오빠랑 우리가 되는 것도 나쁘진 않을테니까.”소연은 여전히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녀로서는 하림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할 지 잘 알 수 없을 것이었다. 비록 화실에서 잠시 함께 정을 나눈 사이라곤 하지만 그걸 감히 사랑이라고는 부를 수 없을 것이었다. 그래도 하림이 ‘우리’라고 부르는 순간, 왠지 모를 친밀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하림도 마찬가지였다. 모래알처럼 많은 인간들 사이에서 그 누군가 그 누구를 향해 ‘우리’라고 부르는 순간, 그 두 존재는 삽시간에 하나가 되어 버린다. 그렇게 하나가 된 수많은 ‘우리’들의 집합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아닌가.“우리 같이 그렇게 새벽부터 밤까지 죽도록 박이 터지도록 일해서 돈 많이 벌자.”하림이 순대를 씹으며 말했다.“설마 하림 오빠 나랑 결혼하잔 말은 아니겠죠?”소연이 웃으며 짐짓 확인이라도 해보듯 말했다.“왜? 안 돼?”“그냥.”“후후. 결혼이야 살면서 천천히 생각해보면 돼지, 뭐. 안 그래? 요즘은 다들 그렇게 따로따로 함께가 유행이라더라.”“따로따로 함께.....?”“응. 따로따로 함께. 말하자면 동거인 셈이지. 그러다 마음에 들면 죽을 때까지 함께 사는 거구. 너나 나처럼 돈 없는 백수랑 백조들에겐 딱이지.”그리고나서 실없이 웃었다. 농담이 진담이고, 진담이 농담이었다.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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