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꽃들이 요란하다. 온종일 살림이나 하고, 남편과 아이들 걱정에 한숨 쉬며, 막장 드라마에 넋을 빼앗겼던 누나들마저 '꽃누나'로 변신, 배낭을 메고 외출에 나섰다. 이제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들은 온갖 무서리와 천둥 따위는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올 연말 '꽃누나'들이 '꽃중년' '꽃할배' '꽃할매'로 이어지는 '꽃님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며 '노세 노세' 대열에 들어섰다. 이들은 모두 진작에 퇴조한 '꽃미남'이 그 연원이다. 꽃님들은 젊은 애 한 명(꽃미남) 짐꾼으로 부리며 '인생은 지금부터'라고 청바지에 배낭 메고, 스마트폰을 든 채 세상 구석구석을 누비느라 야단법석이다. 100세 시대를 맞아 '꽃님'들에게는 '6070'마저 청춘에 불과하다. 그러니 젊어서(?) 놀아야겠다고 '여행을 떠나'는 게 이상할 것도 없다. 아예 10대 청소년처럼 꾸미고, 놀기를 주저하지 않는 노인들도 전혀 낯설지 않다. 누구라도 나서서 '나잇값 좀 하라"고 충고했다간 전쟁을 치를 판이다. 이들은 전쟁에서 '사라질지언정 죽지 않는 노병'이다. 이들은 노화, 퇴화하지 않고 그저 진화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꽃' 신드롬은 100세시대의 문화소비를 대표하는 메타포어다. 꽃은 사전적 의미로 식물의 가지나 줄기 끝에 예쁜 색깔과 모양으로 피어나는 부분을 뜻한다. 문학적으로는 미모ㆍ사랑ㆍ정염ㆍ열망 등의 표현이며 정치적으로는 '우두머리'를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일련의 '꽃'들은 '젊음', 즉 항노화를 추구하거나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먹고, 쓰고, 탐내며, 윤택한 삶을 추구하는 무리들을 묶어서 사회계층화시킨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이미 자본도 꽃님들과 결탁하기에 혈안이다. 꽃님들은 돈의 힘을 과시하며 해외여행, 고급 외식 및 주택산업, 패션, 의료, 명품시장 등에 큰손으로 등장해 새로운 소비를 주도하는 중이다. 올해 우리 문화시장을 강타한 '꽃할배'만 해도 그렇다. 꽃할배들을 위한 우리나라 고령친화산업은 2010년 32조원, 2015년 67조원, 2020년 124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판국이다. 여기에 정부가 미래성장동력으로 꼽은 항노화산업을 더하면 시장 규모는 더욱 커진다. 의료시장에서는 수억원대에 달하는 프리미엄 건강검진 및 노화도, 유전자 검사, 스파, 운동요법, 영양요법 등 노화방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병원이 등장한 지 오래다. 꽃님들은 생물학적 수명에 저항하기 위해 각종 의학기술 등을 동원하는 단계다. 사회적 영향력도 막강해졌다. 그러니 인간의 생로병사가 이제는 자연현상이 아니다. 현실 속 영원히 사는 뱀파이어족에 대한 갈망이 시작된 셈이다. 누나ㆍ중년ㆍ할매ㆍ할배들이 '꽃'의 이름을 다는 순간 나이에 대한 분별도 사라져가고 있다. 노화에 저항하고자 하는 열망, 그 열망을 실현시켜줄 수 있는 온갖 기술을 다 부리고 누리려는 사람들에게 100세시대는 그저 축복일 따름이다. 그러나 모두에게 축복일 수는 없다. 지갑이 두둑한 사람과 지갑이 얇은 사람이 설국열차를 나눠타고 있는 형국, 즉 양극적 사회에서 꼬리칸 사람들의 절망도 더욱 깊어지는 분위기다. 다들 젊어지고, 놀고, 유희를 일삼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또한 젊어지고자 하는 욕망도 마찬가지다. 어느 시대건 노화에 저항하는 형태는 늘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집단화되고 계층화되는 형태로 비춰진 적은 드물다. 단연코 '지는 꽃'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소박한 시절은 갔다. 젊음과 늚음이 어우러지고, 삶을 더욱 명징하게 바라보려는 분별과 경계 또한 허물어졌다. 여기에 절제된 욕망을 끌어내려는 자본의 탐닉도 더욱 거세다. 가히 '꽃'의 시대가 사람들을 더욱 풍요롭게 할 것인지, 인간의 생로병사에 대한 저항이 어떤 사회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절실하다. 이규성 사회문화부 선임기자 peac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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